국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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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일(國慶日)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법률로써 지정한 날.

삼일절(三一節), 제헌절(制憲節), 광복절(光復節) 및 개천절(開天節) 등의 4대 국경일이 있는데, 이는 1949년 10월 1일 법률 제53호로 공포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지정되었다.

3.1절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기미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이며, 제헌절은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의 제정ㆍ공포를 경축하는 날이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국권을 회복한 날이자 1948년 8월 15일 우리 나라 정부수립 기념일이며, 4대 국경일 중 가장 경사스러운 날이다. 10월 3일 개천절은 서기전 2333년에 단군이 처음으로 우리 나라를 세운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삼일절(三一節)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족의 단결을 굳게 하며, 국민의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 4대 국경일의 하나로 매년 3월 1일이다.

1919년 3월 1일 정오를 기하여 일제의 압박에 항거, 전세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온 민족이 총궐기하여 평화적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정부는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 공포하여 이날을 국경일로 정하였다. 이날은 3부 요인을 비롯해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여 기념식을 거행하며, 조국광복을 위하여 싸우다 순국한 선열의 유족 및 애국운동가들로 구성된 광복회 회원들은 별도로 파고다공원에 모여 그날의 뜻을 되새기는 의식을 거행한다.

또한, 정부에서는 광복회 회원들에게 3일간 철도·시내버스·수도권전철 등에 대한 무임승차의 편의를 제공하며, 전국의 고궁 및 공원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도록 하고, 일반가정은 전국적으로 태극기를 게양하여 그날의 의의를 기린다.

 

삼일운동(三一運動)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일어난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 일명 기미독립만세운동이라고도 한다.

강제 한일병합 뒤 일본의 부당한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열사들이 각지에서 독립운동에 나서자, 총독부는 강력한 무단정치를 감행하여 가혹한 탄압을 자행하는 한편, 민족 고유문화의 말살, 경제적 지배의 철저화로 우리 민족의 정당한 민족적 저항의 기반을 없애려고 애썼다. 그리하여 독립운동지도자들은 중국·만주·노령·미주 등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거나, 혹은 지하로 숨어서 비밀리에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민족사적 의의를 보면, 3ㆍ1 운동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한국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고, 이로 인하여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을 보게 되었다. 또한, 이민족에 대한 끈질기고 강렬한 독립투쟁정신을 고취하였을 뿐 아니라, 일제의 무단통치방법을 이른바 문화정책으로 바꾸게 하였으며, 민족의식과 민족 정신에 새로운 자격과 힘을 주어 교육의 진흥, 신문예운동ㆍ산업운동을 통하여 민족자립의 기초를 다지게 하였다. 사상사적 측면에서의 의의를 살펴보면 자주독립사상을 들 수 있다.

독립선언서 일본정부에 보낸 통고문,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독립청원서 등에는 자주독립의 사상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한용운의 ≪조선독립의 서≫에서도 천명한 바 있는 자유평등사상ㆍ민주주의사상, 애국ㆍ애족ㆍ인도주의를 곁들인 신사상의 출현을 들 수가 있다.

3ㆍ1운동은 경제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3ㆍ1운동 이전부터의 노동자파업운동ㆍ납세거부운동ㆍ물산장려운동 및 국산품애용 등 경제적 자립의 꾀하는 운동은 그 뒤에 계속되어, 저축을 증대하여 이를 기반으로 민족기업을 건설하려는 운동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 같은 민족기업의 붐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한국경제사의 내재적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제헌절(制憲節)

1948년 7월 17일에 제정, 공포된 <헌법>의 제정을 기념하는 날. 4대 국경일의 하나로 매년 7월 17일로서 공휴일로 되어 있다.

조선왕조 건국일이 7월 17일로서, 이날과 맞추어 공포하였다.

이날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헌법의 제정을 온 국민이 경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헌법수호를 다짐하는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온 국민은 가정에 국기를 게양하여 이날의 뜻을 높이고 있다.

 

 

광복절(光復節)

4대 국경일의 하나,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되찾은 날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1949년 10월 1일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 국경일이 되었다.

이날은 경축행사를 전국적으로 거행하는데 중앙경축식은 서울에서, 지방경축행사는 각 시·도 단위별로 거행한다. 이날의 의의를 고양하고자 전국의 모든 가정은 국기를 게양하여 경축하며, 정부는 이날 저녁에 각계각층의 인사와 외교사절을 초청하여 경축연회를 베푼다.

광복회원을 위한 우대조치의 하나로, 광복회원 및 동반가족에 대하여 8월 14일부터 8월 16일까지 3일 동안 전국의 철도·시내버스 및 수도권전철의 무임승차와 고궁 및 공원에 무료입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개천절(開天節)

10월 3일 거행되는 우리나라 국경일의 하나.

서기전 2333년 무진년(戊辰年), 즉 단군기원 원년 음력 10월 3일에 국조(國祖) 단군(檀君)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檀君朝鮮)을 건국하였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되었다.

그러나 개천절은 '개천(開天)'의 본래의 뜻을 엄밀히 따질 때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도, 이보다 124년을 소급하여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환웅(桓雄)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백두산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단군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함)ㆍ이화세계(理化世界, 세계를 다스려 인도함)의 대업을 시작한 날인 상원갑자년(上元甲子年, 서기전 2457년)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성이 있다.

따라서 개천절(開天節)은 민족국가의 건국을 경축하는 국가적 경축일인 동시에, 문화민족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적 명절이라 할 수 있다.

민족의 전통적 명절을 기리는 행사는 먼 옛날부터 제천행사(祭天行事)를 통하여 거행되었으니,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맥의 천무(舞天) 등의 행사는 물론이요, 마이산(摩尼山)의 제천단(祭天壇),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 평양의 숭령전(崇靈殿) 등에서 각각 행하여진 제천행사에서 좋은 사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우리민족은 10월을 상달(上月)이라 불러, 한 해 농사를 추수하고 햇곡식으로 제사를 차려 감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천행사를 행하게 되는 10월을 가장 귀하게 여겼고, 3일의 3의 숫자를 길수(吉數, 좋은 수)로 여겨왔다는 사실은 개천절의 본래의 뜻을 보다 분명히 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명절을 개천절이라 이름짓고 시작한 것은 대종교에서 비롯한다. 즉, 1900년 1월 15일 서울에서 나철(羅喆) 화엄대종사(弘巖大宗師)을 중심으로 대종교가 중광(重光, 다시 교문敎門을 여는 것)되자,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매년 행사를 거행하였다. 그리하여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개천절 행사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특히 상해임시정부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여 경하식(慶賀式, 기쁘고 즐거운 일을 축하하는 행사)을 행하였고, 충칭(중경, 重慶) 등지에서도 대종교와 합동으로 경축행사를 거행하였다.

광복 후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계승하여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식 제정하고, 그때까지 경축식전에서 부르던 대종교의 <개천절 노래>를 현행의 노래로 바꾸었다.

개천절은 원래 음력 10월 3일이므로 대한민국 수립 후까지도 음력으로 지켜왔는데, 1949년에 문교부가 위촉한 '개천절 음ㆍ양력 환용심의회(換用審議會)'의 심의결과 음ㆍ양력 환산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와 '10월 3일'이라는 기록이 소중하다는 의견에 따라, 1949년 10월 1일에 공포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 음력 10월 3일을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거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종교에서 행하던 경하식(慶賀式)은 국가적 행사에 맞추어 양력 10월 3일에 거행하고, 제천의식의 경우만은 전통적인 선례에 따라 음력 10월 3일 상오 6시에 행하고 있다.

이날은 정부를 비롯하여 일반 관공서 및 공공단체에서 거행되는 경하식과 달리, 실제로 여러 단군숭묘단체(檀君崇慕團體)들이 주체가 되어 마니산의 제천단, 태백산의 단군전, 그리고 사직단(社稷壇)의 백악전 등에서 경건한 제천의식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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