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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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풍속(歲時風俗)이란?

 

세시풍속(歲時風俗)이란 일 년을 단위로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속을 말한다.

농경사회의 풍속은 대부분 일 년을 주기로 하는 농사력(農事曆)에 따른다. 그러므로 세시풍속에는 농사력이 반영되어 있고, 농업 생산력이 발전해서 농사력이 바뀌면 세시풍속도 바뀐다.

세시풍속은 음력의 달별, 24절기, 명절 따위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이에 따른 의식 및 의례 행사도 포함된다. 따라서 세시풍속은 농민이나 어민과 같은 직접 생산자인 민중들의 주기적이고 반복적인 삶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시간 관념이 나타나 있는 역법체계를 반영한다.

우리나라는 땅 면적이 다른 나라에 비해 작지만 북부지방과 남부지방, 산간지대와 평야지대의 기후와 풍토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재배하는 농작물과 농사 주기 또한 다르다. 그에 따라 지역마다 세시풍속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업을 주로 하는 어촌이 생기면서 농촌과는 다른 어촌의 세시풍속도 형성되었다.

세시풍속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록 문헌은 대부분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작성한 것이다. 정동유(鄭東愈, 1744∼1808)의 서영편(晝永篇, 1805), 유득공(柳得恭, 1749∼?)의 경도잡기(京都雜記, 정조연간), 김만경(金邁淳, 1776∼1840)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1819),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 등은 대표적인 세시풍속 관련 종합서이다.

 

설날(元旦)

원단은 한해의 첫날로 세수(歲首) 또는 연수(年首)라 부르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설' 또는 '설날'이라고 부른다.

세수·연수란 말은 한해의 머릿날 즉 첫째날이란 뜻이고, '설'이란 한자로 신일(愼日)이라고 하는데, 근신(謹愼)하여 경거망동(輕擧妄動)을 삼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제석(除夕, 섣달그믐)을 마지막으로 묵은 해는 지나가고 '설날'을 시점으로 새해가 시작되니, 1년의 운수는 그 첫날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던 옛사람들은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몸가짐으로 복(福)을 기대해서 연초인 설날에 심신(心身)을 근신했다.

농사를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으로 여겨온 한민족은 신라 때 이미 '원일상경 시일배일월신(元日相慶 是日拜日月神)'하였으니, 1년 동안의 우순풍조(雨順風調, 농사가 잘되도록 때를 맞추어 비가 오고 바람이 고르게 부는 것)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신에게 제사를 하고, 여러 가지 행사도 가졌다.

정월의 세시행사 중 비교적 지금까지 이어지고 잘 알려져 있는 것에는 우선 설날의 차례(茶禮), 덕담(德談), 토정비결(土亭秘訣) 보기, 복조리 사고팔기 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채 간신히 맥을 유지해가는 몇가지 풍속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우선 설날 이른 아침에 사람들은 짐승의 소리를 듣고 그해 1년 동안의 운수를 점쳤는데 까치소리는 길한 것, 까마귀 소리는 흉한 것으로 여겨 노인들은 일부러 까치가 울만한 곳을 찾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또 설날 이른 새벽 부인네들은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오는데 이를 '용(龍)알뜨기'라고 부른다. 설날 우물안에다 용이 알을 낳는다고하여 가장 먼저 우물물을 떠가는 사람이 용알을 떠가는 것이고, 먼저 떠간 사람은 지푸라기를 우물 안에 던져 표시를 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설날 저녁에는 1년 동안 모아두었던 머리카락을 불태웠는데, 머리털을 그대로 기름종이에 싸서 모았다가 설날에 태우면 길하다는 것이다.

설날 밤이 되면 사람들은 초저녁부터 신발을 감추어 두었는데 설날 밤에 하늘에 있는 야광귀(夜光鬼)가 인간세상에 내려와 집마다 찾아다니는데 제 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으며, 이날 밤 신발을 잃어버린 사람은 1년내내 재수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설날에 행해지던 풍속을 다음과 같다.

  • 설빔(歲粧) : 설날 아침 갈아입을 새옷을 말한다.
  • 차례(茶禮) : 설날 아침 일찍 음식(歲饌)과 술(歲酒)을 사당에 진설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정조차례(正朝茶禮)라고 한다.
  • 세배(歲拜) : 차례가 끝나고 어른께 드리는 새해 첫인사로, 세배를 마치고 어른에게는 술과 음식을 아이들에게는 과자와 세뱃돈을 마련하였다가 주었다.
  • 세찬(歲饌) : 설날 차례와 손님 접대를 위해 준비한 여러 가지 음식, 대표적인 것으로 흰 떡국이 있다.
  • 세주(歲酒) : 설날에 먹는 냉주(冷酒)를 말하며, 찬 것을 그대로 마신다.
  • 덕담(德談) : 새해를 맞아 서로 복과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말이다.
  • 성묘(省墓) : 조상의 묘에 새해 인사를 고(告)하는 것이다.
  • 복조리 : 1년 동안 이른 새벽에 조리를 사두면 1년 동안 복이 많다는데서 이날 산 조리를 복조리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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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上元)

대보름은 그해 맨먼저 보름이 되는 날로서 한자로는 상원(上元, 으뜸되는 밤)이라고 하며 우리나라 전체 세시풍속 행사중 5분의 1이 넘는 행사가 집중될 만큼 중요한 날이다. 상원(上元)이란 중워(中元, 음력 7월 15일, 백중날)과 하원(下元, 음력 10월 15일)에 대칭되는 말이다. 음력 1월 15일(정월 보름날)을 대보름이라 하며, 음력 1월 14일을 작은 보름이라 한다. 민속 놀이와 세시 행사들이 가장 많이 행해지는 날이며, 마을 신에 대한 大同儀禮, 大同會議, 大同놀이 등이 이때 모두 이루어진다.

보름날 아침에 집집마다 약밥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다섯가지 이상의 곡식(쌀, 보리, 콩, 조, 기장)을 섞어 지은 밥을 나누어 먹었으며 세집 이상의 타성집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아진다고 전해온다.

대보름 행사는 14일 저녁부터 시작된다.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달맞이나 달집태우기를 했다. 밤에 들판으로 나가서, 새싹이 잘 자라게 하고 논밭의 해충을 없애기 위해 쥐불을 놓았다.

아이들은 연날리기, 바람개비돌리기, 실싸움, 돈치기 따위를 즐겼으며, 어른들은 다리밟기, 편싸움, 횃불싸움, 줄다리기, 동채싸움, 놋다리밟기 따위를 했다. 대보름날 밤에는 항상 온 마을이, 때로는 마을과 마을이 대항하는 경기를 집단적으로 즐겼다.

정월 대보름에는 여러 종류의 세시풍속 행사가 벌어졌다. 이는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민족이 대보름을 풍요의 원점으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 보름밤지키기: 정월 열나흗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해서 잠을 자지 않는다. 자는 아이가 있으면 눈썹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발라 놓는다.
  • 부럼깨기: 밤, 잣, 호두, 은행 등을 소리나게 깨물어 먹으면 1년동안 이가 강해지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를『부럼』이라 하며, 일 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고 치아가 튼튼해져서 건강한 한 해를 보낼 수 있다고 여겼다.
  • 귀밝이술(耳明酒): 새벽에 맑은 술, 청주(淸酒)를 데우지 않고 마시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귀가 밝아지고 귓병이 생기지 않으며 일년내내 좋은 소식만 있고 귀가 밝아지고 눈이 잘 보인다고 한다. 어린이에게도 귀밝이술을 마시게 한다.
  • 보름나물(묵은나물) : 호박고시, 무고시, 외고시, 가지나물, 버섯고사리 등 여름에 말려둔 나물을 삶아 먹는데 이를 진채식(陣菜食)이라고도 한다. 대보름날 이를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였음
  • 다리밟기: 다리를 밟아 건강을 기원한다.
  •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첫 보름달이 뜨는 밤에 하는 것이 원칙이다.
  • 달맞이: 보름달이 떠오르는 순간, 농악대의 상쇠가 악기를 울리면 달맞이하러 나온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숙이고 소망을 빌었다.
  • 농점(農占) : 달집 태우기, 사발점, 그림자점, 달불이, 소밥주기 등으로 그 해의 풍.흉(豊.凶)을 점친다.
  • 소밥주기: 대보름날 아침에 찰밥과 나물을 키에 담아 가지고 외양간에 가서 소에게 준다. 소가 밥과 나물 중 어느 것을 먼저 먹는가에 따라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 달점: 달의 빛깔을 보고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붉으면 가뭄, 허옇게 비추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 불놀이: 깡통 속에 솔방울이나 관솔을 넣어 불을 지핀 뒤 깡통을 빙빙 돌리면 불꽃이 원을 그리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 더위팔이 : 아침해가 뜨기전에 만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대합하면『내더위』라고 소리친다. 이렇게 자기의 나이만큼 하고나면 더위를 팔아서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 동제(洞祭): 마을 공동체의 신에게 제를 올린다.
  • 제의(祭儀)와 놀이 : 지신밟기, 별신굿, 안택고사, 용궁맞이, 연띄우기, 연싸움, 줄다리기, 용잡이, 놀이, 윷놀이, 널뛰기, 걸궁(농악), 햇불놀이, 다리밟기

 

한식(寒食)

한식(寒食)은 동지후(冬至後) 105일째 되는 날로 잡는다. 언제나 청명(淸明) 안팎에 든다. 한식때는 조상의 묘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무덤이 헐었으면 떼(잔디)를 다시 입히니 이것을 개사초(改沙草)라 하며, 묘 둘레에 식목도 하게 된다. 한식에는 글자 그대로 더운 밥을 안 먹고 찬밥을 먹는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중국 진(晉)나라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간신배에 몰려 금산에 숨어 있었는데, 진(晉) 문공(文公)이 그의 충성을 알고 그곳에서 나오길 명했으나 나오지 않았다. 도리없이 불을 지르고 나오길 기다렸으나 그는 끝내 안나오고 타죽고 말았다. 그래서 타죽은 충신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 더운 밥을 삼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식은 중국에서 전해온 풍속이다. 이즈음에는 새싹이 보이기 시작하는 때이고 농가에서는 농경준비를 하기 시작하며 식목을 하거나 채소씨를 뿌린다.

 

삼짇날

삼짇날은 3의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음력 3월 3일)로서 봄철의 시작을 장식하는 명절이다. 강남 갔던 제비도 옛집에 돌아오고 동면하던 뱀도 땅 속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날이다. 이날 흰나비를 보면 부모의 상을 당한다고 하고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보면 길하다고 한다. 제비를 보면 농사가 풍년이 든다고하며 뱀을 보면 운수가 길하다고 한다. 장을 담그면 장맛이 좋고 호박을 심으면 잘되고 약수를 마시면 연중무병하고 아무리 집안 수리를 해도 무탈하다고 한다. 머리를 감으면 물이 흐르는 것처럼 머리카락이 소담하고 아름답다고 해서 부녀자들은 머리를 감는다. 또한 산에 가서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해서 둥근 떡을 만들고 기름에 지진 것을 화전(花煎)이라 한다. 또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것을 가늘게 썰어 오미자 국에 띄우고 꿀을 섞고 잣을 곁들인 것을 화면(花麵)이라 한다. 이런 것들은 시절음식으로 제사에도 쓰인다.

 

단오(端午)

음력 5월 5일을 단오·수리(戍衣) 또는 중추절(天中節)이라 부른다.

단오는 1년 중에서도 큰 명절로, '단'(端)은 끝과 처음이라는 뜻이 있고 '오'(午)자는 5(五)자와 음이 통하여 단오란 '초닷새'라는 뜻이 된다.

고대 중국의 음양 사상에서 홀수를 양으로 치되, 5월 5일은 양기가 가장 왕성한 천중가절로 쳐왔다. 실제로 이때는 오랜 겨울을 보내고 신록이 우거지는 부활의 계절이며 쑥이나 익모초(益母草) 등 약초를 뜯어도 약기운이 제일 많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단오를 '수릿날'이라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년)는 이 날 쑥을 뜯어서 만들어 먹는 쑥떡이 수레바퀴 모양이기 때문에 수릿날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수리'란 위, 높은 곳, 봉우리, 산 등의 뜻이 있으니 수릿날이란 윗날, 신의 날이란 명절의 뜻을 가진 옛말이라는 주장에 더 수긍이 간다.

이 날 여자들은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뜻에서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였으며, 창포 뿌리로 비녀를 깎아 머리에 꽂기도 하였다.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칼이 소담스럽고 윤기가 난다고 하는데, 이 창포탕에 쑥을 넣어서 삶기도 한다. 또 이 날 익모초와 쑥을 뜯어 두는 풍속이 있다. 여름에 익모초를 달여서 즙을 먹으면 매우 쓰지만 식욕을 얻는다고 해서 민간의 약으로 태고적부터 동서양에서 써왔다.

이 날 또한 민속놀이로서 남자들은 씨름과 활쏘기를 하여 승부를 겨뤘고 여자들은 그네뛰기를 하여 단오 명절의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강릉단오제와 법성포단오제 등이 유명하다.

 

유두(流頭)

음력 6월 15일은 유두일이라고 한다. 유두란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이란 말에서 나온 약자이다.

유두일에는 맑은 개울을 찾아가서 목욕하고 머리를 감아 하루를 청류(淸遊)한다. 그러면 액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유두의 풍속은 신라 때에도 있었으며 동류(東流)에 가서 머리를 감는 것은, 동쪽은 청(淸)이요 양기가 가장 왕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두일에 문사들은 액막이로 술을 마시고 음식을 장만하여 계곡이나 맑은 냇물을 찾아가서 풍월을 읊으며 하루를 즐겼는데 이를 유두연(流頭宴)이라고 한다.

유두 무렵에는 참외, 수박 등의 과일이 새로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두 음식으로 수전(水團), 밀전병 등의 각종 떡이 있는데 국수도 아울러서 이들을 먼저 조상신들게 올리니 이것이 유두천신(流頭薦新)이었다. 사당에 유두천신을 하고 나면 식구들이 그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이날 먹는 수단이라는 것은 멥쌀가루를 쪄서 만든 떡을 꿀물에 넣고 얼음에 채워서 먹는 것이고, 밀전병은 빈대떡처럼 부친 것이다.

 

삼복(三伏)

하지후(夏至後)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 넷째 경일(庚日)을 중복(中伏), 입추후 첫 경일(庚日)을 말복(末伏)이라 하고 이 셋을 통틀어서 삼복(三伏)이라고 한다. 따라서 복은 10일에 한 번씩 오지만 말복은 입추 관계로 20일만에 오는 경우가 많다.

절기상으로는 가장 힘겨운 농사인 김매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삼복(三伏) 조(條)에 보면 관심은 개장(狗湯)에 집중되어 있다. 개를 삶아 피를 넣고 푹 끓인 것을 개장이라 한다. 닭이나 죽순을 넣으면 더욱 좋다. 또 개국에 고추가루를 타고 밥을 말아서 시절 음식으로 먹는다. 그렇게하여 땀을 흘리면 더위를 물리치고, 허한 것을 보충할 수 있다. 그것은 가장 허해지기 쉬운 때의 가장 손쉬운 우리의 영양보급의 방법이었던 셈이다.

또한 햇병아리를 잡아 인삼과 대추와 찹쌀을 넣고 삶아 먹는 삼계탕(蔘鷄湯)도 만들어 먹었으며, 복날에 팥죽을 먹는 것도 있는데 팥죽은 무더운 복중에 악귀를 쫓고 무병하려는 데서 나온 풍속이다. 이때 팥죽에는 찹쌀가루로 빚은 새알심을 넣어 끓였다.

복날에는 벼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속언이 있는데 절기상으로 벼이삭이 패기 직전이어서 생긴 말이다.

 

칠석(七夕)

음력 7월 7일은 칠석(七夕)이라고 부르며,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오작교(烏鵲橋)를 통해 1년중 단 한차례 만난다는 전설이 있는 날이다.

이날 처녀들은 직녀성에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빌고 소년들은 학업성취를 빌었으니 칠석날의 견우성과 직녀성은 젊은이로 하여금 소원을 이루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고,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견우성과 직녀성의 두 별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갈라져 있었다. 두 별은 서로 사랑을 하지만 마주 바라만 볼 뿐 은하수 때문에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은하수에 다리만 있으면 자주 상봉하여 사랑을 나눌 수가 있겠으나 다리가 없는 것이 늘 원망스러웠다.

견우와 직녀의 딱한 사정을 알고 해마다 칠석날이 되면 지상에 있는 까치와 까마귀가 하늘로 올라가 은하수에 다리를 놓으니, 이것이 오작교(烏鵲橋)이다.

견우와 직녀는 1년에 한 번 소원을 이룬다. 그러나 사랑의 회포를 다 풀기도 전에 새벽 닭이 울고 동쪽이 밝으면 다시 이별을 하지 않으면 안되고 또 다시 1년을 떨어져서 보내야 한다.

칠석날 지상에는 까마귀와 까치는 한 마리도 없으며, 어쩌다 있는 것은 병들어 하늘에 가서 오작교를 놓는데 참여 못하는 것들 뿐이었다.

칠석날 저녁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상봉하는 기쁨의 눈물이라고 하며, 이튿날 새벽에 비가 오면 이별의 슬픈 눈물이라고 한다. 이 날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밀가루 음식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각 가정에서는 마지막으로 밀 음식인 밀국수와 밀전병을 만들고 또 햇과일을 차린다. 칠석제 또는 칠성제라고 해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들의 무병장수를 빈다. 처녀들은 별을 보며 바느질 솜씨가 좋게 해달라고 빈다. 마을에서는 서낭당 등에서 자녀의 무병과 장수를 빌기도 한다. 장마가 지난 때라 그 동안 축축해진 옷과 책을 볕에 쬐는 거풍(擧風)의 풍속이 있다.

 

추석(秋夕)

음력 8월 15일은 추석(秋夕), 한가위, 가위, 가배, 중추절이라고 불리워지며, 예로부터 '오월 농부 팔월 신선'이라하여 바쁜 일손을 잠시 쉬는 1년 중 가장 즐거운 명절이었다.

이때는 농사일도 거의 끝나서 햇곡식을 먹을 수 있으며, 과실도 풍성하고 달도 가장 밝아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추석에는 새옷으로 갈아입고 송편을 빚고 술도 빚어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성묘와 벌초로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이 있다. 객지에 분산되었던 가족들도 고향에 모여 즐거운 한때를 맞이한다.

지역마다 특색있는 추석놀이가 있는데, 전라도는 강강수월래, 경기도와 충북은 거북놀이로 유명하다. 여유있는 집에서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농사에 꼭 필요한 소(牛)의 노고를 위로하고자 소의 놀이를 하기도 하였다. 전라도에선 '올게심니'라 해서 추석을 전후하여 잘 익은 벼나 수수·조의 목을 모아 기둥이나 방문에 걸어두고 다음 해의 풍년을 빌기도 했다.

이러한 추석의 유래는 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 9년에 여섯 부락의 여자들을 두패로 나누어 칠월 보름부터 팔월 보름까지 길쌈짜기 시합을 하게 하여 이긴 편은 상을 주고 진 편은 술과 음식을 이긴 편에게 대접하게 하면서 가무와 유희를 즐겼는데 이것을 '가배(嘉俳)'라고 하였으며, 이 때 부른 노래는 회서곡(回蘇曲)이라고 하였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길쌈의 공동작업은 영남지방에 그 풍속이 남아 있다.

추석은 민족 대명절이 되어 객지의 자손들이 고향을 찾아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해 조상의 은혜를 잊지 않는 아름다운 풍속으로 정착했다.

추석은 명칭은 처음에는 가배·가위라 칭해지다가 한문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중추·추중·칠석·월석 등을 사용하였으며 뒤에 정리되고 합해져 추석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벌초 : 대개 추석전에 조상의 묘를 찾아가서 풀을 베는 풍속이다.

    송편 : 햅쌀로 빚은 달떡으로 속에는 콩, 팥, 밤, 대추 등 그해 수확한 것을 쓴다.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예쁜 배우자를 만나게 되고, 밉게 만들면 못생긴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고하여 총각·처녀들은 솜씨를 뽐낸다.

    강강수월래 : 남도지방 풍속으로 추석날 밤에 하는 부녀자들의 놀이다.

     

우리의 전통놀이
제기차기는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할 수 있는 놀이로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많이 차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입니다.
제기는 문구점에서 살 수도 있지만 직접 만들어보면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차다가 손으로 제기를 잡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습니다. 제기차기에서 진 사람은 이긴 사람에게 제기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팀을 나누어서 한다면 더욱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윷놀이는 명절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함께하는 즐거운 놀이 입니다. 오랜 옛날부터 해 왔던 전통 놀이입니다. 윷, 말 그리고 말이 옮겨 다닐 수 있는 말판이 필요합니다. 가족과 함께 윷과 말판을 직접 만들어보세요. 더욱 재미게 즐길 수 있습니다.
 
튕기기에 좋은 작은 돌(말)을 준비하고 바닥에 원이나 사각형의 놀이판을 그려 한 곳을 각자 자기집으로 정하고 집을 그려줍니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순서를 정해줍니다. 이긴 사람은 자신의 돌을 세 번 튕겨서 밖으로 나갔다가 세 번 튕겨서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면 튕기는 동안 말이 지난 선 안이 자기 땅이 됩니다.
 
연날리기는 우리의 오랜 민속 놀이로 바람이 있으면 어디서나 할 수 있는 놀이 입니다. 연을 높이 날리기 위해서는 연 실을 팽팽하게 잘 당겨야 합니다. 얼레(연 줄을 감아 놓은 나무 손잡이)를 잘 움직이면 연을 더 멀리 날릴 수 있습니다. 방패연과 가오리연 등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보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양절(重陽節)

음력 9월 9일은 중구(重九) 또는 중양(重陽)이라고 부른다. 즉 양수(陽數)가 겹쳤다는 뜻으로 3월 3일의 삼짇날, 5월 5일의 단오 같은 음양철학적인 중일명절(重日名節)의 하나이다.

이날 각 가정에서는 화채와 국화전, 국화주를 만들어 먹었다. 사람들은 산이나 계곡을 찾아 배불리 먹고 술에 취하여 하루를 단풍놀이로 즐겼는데, 요즈음 학교 가을소풍의 유래라고 볼 수 있다.

 

제석(除夕)

1년의 마지막 날인 음력 12월 30일을 섣달 그믐 또는 제석(除夕), 제야(除夜)라 부른다. 이날 저녁에는 1년도 다 지나간다는 인사로 사당과 어른을 찾아가 묵은 세배(구세배, 舊歲拜)를 하였고,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성묘도 하였다. 밤에는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하여 잠을 자지 않았는데 이를 해지킴(수세, 守歲)라고 하였다.

집 안팎을 깨끗이 대청소하여 묵은 해의 잡귀와 액을 물리치고 신성하게 새해를 맞이하였다. 또한 1년 중에 있었던 거래의 종결을 맺으니 외상값을 거둬 들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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