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묘 선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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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족보 : 휴대용 요약 가승(족보)

 

          

동률(東律, 1585.1.9 ~ 1622.12.18, 자 : 진백鎭伯, 호 : 다천茶川)

    어릴 때부터 효우행실(어버이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 및 행동에 나타나는 품행)이 있었고 자질과 성품이 단정하였다.

    대인(태동부군)의 뜻에 따라 한강, 락제 두 분 스승으로부터 수학(공부)하여 문학과 품성을 세상에서 추중(推重, 높이 받들어 귀중하게 여김)하게 되었다.

    1611년(광해, 신해년) 종씨(사촌 형) 호군공과 더불어 회제, 퇴계 두 분 스승의 변무소청에 나아 가셨다(두 분 스승의 일에 대하여 상소를 올림)

    기미년 사마시에 북인들이 정권 잡는일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니, 곧 시골로 돌아와서 다천(지금의 지묘동)에 집을 짓고, 다시 관직에 나갈 뜻이 없이 날마다 모든 아우들과 더불어 정사(정치와 사회의 일)를 강론하였다.

    손모당(처눌), 장여헌(현광)과 더불어 서로 방문하여 강론하였으며, 도의로서 사귀었다.

    문헌 다천실기가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절남(節南, 1615.8.17 ~ 1662.4.18, 자 : 자첨子瞻, 선무랑宣務朗)

    행의와 문사가 당세(그 당시)에 이름이 높았으며, 시운(시와 글짓기)에 공후가 있어 선비들이 모두 흠모(존경하고 따름)하였다.

     

익남(翊南, 1619.8.3 ~ 1678.3.24, 자 : 자한)

    백형과 제종씨 목사공과 더불어 시에 능하셨다.

    항상 태사 신공(신승겸 장군)의 순절한 곳을 슬퍼하여 사람들을 거느리고(동원하여) 재산을 덜여 묘우(신주를 모시는 집)를 세우고, 전토(田土, 논과 밭)를 떼어서 수호(守護, 묘우를 지키고 보호함)하는데 쓰게 하였으며, 사원에 현판을 붙이고 제사를 지내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일을 맡아하였다는 사실이 표충영전기에 기록되어 있다.

     

경류(慶流, 1636.12.30 ~ 1674.2.30, 자 : 군원君遠)

    문사(文辭, 문장)가 숙성하여 여러번 과거를 보셔도 합격하시지 못함.

     

경유(慶濡, 1639.9.2 ~ 1708.3.19, 생부 : 절남, 자 : 군열君悅)

    유서(遺書, 유언을 적어 남긴 글)에 봉선(奉先, 선조를 받드는 것)수약을 정하고 염습(시신에 옷을 입히는 것)시에는 명주와 비단을 쓰지 말 것을 유언하였음.

    배위 : 영천이씨 자암의 손녀

     

수징(壽徵, 1659.6.23 ~ 1718.4.11, 초휘 : 응두, 자 : 칠경七卿)

    자모(모습)가 굉위(높고 거룩함)하며 기도(기풍과 법도)가 청원(맑고 원대)함.

     

수익(壽益, 1668.4.15 ~ 1703.12.14, 자 : 연수延搜)

    사화(문사, 문장)가 유성(넉넉하고) 성예(명성)가 우뚝하였다.

     

수갑(壽甲, 1668.8.17 ~ 1716.8.17, 자 : 원수)

    기량이 홍원(넓음)하여 일향(고을사람들)이 추종하였으며 종족을 창솔(거느림)하고 선조의 제전을 설치.

     

수천(壽天, 1676.5.19 ~ 1742.5.16, 자 : 인수, 통덕랑)

    내행(행실)이 순비(온전히 섞임이 없이 깨끗함, 세상에 때묻지 않음)하여, 외부의 생각(세상에 나아감)을 즐겨하지 않았다.

 

봉석(鳳錫, 1690.3.11 ~ 1703.12.14, 초휘 : 우석, 자 :  덕여德與)

    기우(기풍)가 관작(너그럽고)하고 기량(도량)이 홍원(넓고 넓어)하여 후덕(생김새나 하는 짓이 두텁고 덕스러움)으로서 세상에 추중(推重, 높이 받들어 귀중하게 여김)된 바 있음.

     

형석(衡錫, 1701.4.26 ~ 1761.6.16, 초휘 : 태석, 자 : 태여泰與, 호 : 석계石溪)

    학식과 행의(행실)을 동배들이 높이 받들어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음.

     

문석(文錫, 1696.2.2 ~ 1766.6.27, 자 : 여장汝章)

    학식이 굉심(깊고 심오함)하여 세상에 추중 되었음.

     

효석(孝錫, 1709.11.20 ~ 1789.12.19, 자 : 행원行源)

    효우(어버이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와 지행(知行, 지식과 실천, 참다운 지식은 반드시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지행합일을 실천하였다는 뜻, 양명학의 중심 개념)이 있었음.

     

삼석(三錫, 1715.4.22 ~ 1788.4.2, 자 : 성여省汝)

    처사(무슨 일을 처리함)가 엄정(엄격하고 완전함)하여 문족(집안의 겨레붙이, 집안 사람)들이 흠복(欽服, 마음으로부터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모함) 하였음.

     

인석(寅錫, 1719.8.14 ~ 1777.2.2, 초휘 : 오석, 자 : 춘백春伯)

    지계(志械, 뜻과 기계)가 청상(淸爽, 맑고 상쾌)하여 사우(선비, 친구)들이 공경하였다.

     

윤석(倫錫, 1722.4.9 ~ 1789.8.15, 초휘 : 육석, 자 : 이대彛大)

    풍모(風貌, 풍채가 고운 용모)가 괴오(우뚝솟아)하여 친구들이 추중하였다.

     

흥태(興泰, 1713.8.8 ~ 1788.10.21, 생부 : 명석, 자 : 재안載安, 호 : 사암思菴)

    봉제사(奉祭祀, 제사를 받들어 모심)에 정성이 있었으며 선조를 천양하는데 부지런하였다.

     

흥경(興庚, 1730.3.27 ~ 1795.2.14, 초휘 : 흥복, 자 : 성년聖年, 호 : 서산西山)

    타고난 자질이 도(道)에 가깝고 오로지 학문에 힘섰으며, 총각때부터 아우 서고공과 함께 백불암 문하(門下, 학문의 가르침을 받는 스승의 아래)에 공부하셨다.

    소학동자라는 칭호(稱號)가 있었으며, 조예가 깊고 심오하며, 행동이 독실(篤實, 돈독하고 확실)하여 향방부지(向方不知, 어디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역) 사람들의 흠모하는 바가 되었다.

    백불암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모의 형제의 행실과 효우(어버이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는 굳이 옛사람 중에 비유해도 많지 않을 것이니, 만약 회암(주자)때에 났더라면 소학 책 가운데 올려졌을 것(소학의 내용에 실림)이다.

     

흥지(興之, 1732.10.17 ~ 1786.7.16, 초휘 : 흥좌, 자 : 중빈仲賓, 호 : 서고西皐)

    어릴 때부터 백불암 문하에서 수업하여 성리(주자학)의 학문을 들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우르러 보았다. 행장(行壯,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평생의 행적을 적은 글) : 족증손 도정 지헌공이 찬(贊, 남의 아름다운 행적을 기리는 문제의 한가지, 즉 글을 씀)하였다. 유문집(遺文集, 죽은 사람의 남긴 글 모음)이 있다.

     

흥중(興中, 1738.4.27 ~ 1811.11.23, 자 : 자숭子崇)

    백불암 선생 문하에서 공부하여 독학과 실행으로서 칭송을 받았다.

     

흥동(興東, 1741.1.14 ~ 1811.1.23, 자 : 경춘景春, 호 : 지소枝巢)

    백불암 문하에 수업하여 지행과 학식이 동무들에 추중되었다. 유문집(遺文集, 죽은 사람의 남긴 글 모음)이 있다.

     

흥진(興震, 1721.9.17 ~ 1784.4.11, 자 : 빈경賓卿, 호 : 월애月厓, 통덕랑)

    백불암 문하에 수학하여 봉선(奉先, 선조를 받드는 것)에 지극하였으며, 선묘에 석물(石物, 무덤 앞에 돌로 만들어 놓은 물건, 석의石儀)을 친히(직접, 손수) 계획하여 설치하였다. 유문집이 있다.

     

흥의(興義, 1726.3.3 ~ 1763.11.18, 자 : 방보方甫, 호 : 숭애崇崖)

    백불암선생 문하에 수업하여 문사와 필법이 뛰어났다. 제(아우) 흥립이 행장에서 찬(贊, 남의 아름다운 행적을 기리는 문제의 한가지, 즉 글을 씀)하였음.문헌으로 유실기가 있다.

          

흥립(興立, 1736.5.25 ~ 1736.5.25, 초휘 : 흥교, 자 : 산보山甫, 호 : 천옹喘翁)

    백불암선생 문하에 수업하여 학문과 행의가 유림에 우뚝 솟았음.

    회당 장석영이 문집 서문을 지었으며, 교리 이중구가 발문을 하였으며, 종질 영진이 유사(遺事, 후세에 전하는 사적 또는 죽은 사람의 생전 사적)를 찬(贊, 남의 아름다운 행적을 기리는 문제의 한가지, 즉 글을 씀)하였으며, 소눌 노상직이 행장에서 찬(贊, 남의 아름다운 행적을 기리는 문제의 한가지, 즉 글을 씀)하였다.

    족증손 도정 지헌공이 묘지찬, 잉헌 김소락이 갈문, 재종증손 시술(경산공)이 갈명을 찬(贊)하였다. 유문집이 있다.

     

흥억(興億, 1736 ~ 1775.12.10, 초휘 : 흥광, 자 : 광언光彦, 통덕랑)

    문사와 행의가 당세 유림의 사표(師表, 학식과 인격이 높아 세상 사람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가 되었음.

     

흥발(興發, 자 : 기상其祥, 호 : 요평헌樂平軒, 통덕랑)

    백불암선생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였고, 여러번 예부(신라때 의례를 맡아 보던 관청)에 낙방하니 친구들이 애석히 여기었다.

     

흥벽(興壁, 1739.8.19 ~ 1822.1.19, 초휘 : 흥학, 자 : 사교, 호 : 두와, 국옹)

    백불암선생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이대산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도학과 문장이 세상의 으뜸이 되었다.

    정립제(종로)가 행장에서 찬(贊, 남의 아름다운 행적을 기리는 문제의 한가지, 즉 글을 씀)하였다. 곽면우(종석)가 찬(贊)하였다.

     

진구(鎭九, 1750.5.14 ~ 1822.4.28, 자 : 주평(州平)

    백불암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학문과 효우로 세상에 추중되었음.

     

기진(箕鎭, 1752.6.19 ~ 1822.8.20, 초휘 : 진오, 자 : 맹관孟觀, 호 : 구소鳩巢)

          백불암 문인(文人)

     

하진(廈鎭, 1774.8.16 ~ 1831.12.6, 초휘 : 이진, 자 : 근이近以, 호 : 만문晩聞)

    문학과 행의로 세상에 들어났으며 유고(遺稿)가 있다.

     

진국(鎭國, 1745.8.4 ~ 1770.3.29, 자 : 치안致安)

    백불암 문하에 수업 하였으며 뜻과 행실이 순미(순수하고 깨끗) 하였다.

     

암진( 鎭, 1788.6.8 ~ 1788.6.8, 자 : 태경泰卿, 호 : 노강老岡)

    어려서 필명이 있었으며 더욱 글 공부가 뛰어났다.

    문헌으로 유유고. 필첩이 있다.

     

진형(鎭衡, 1764.6.18 ~ 1805.4.13, 자 : 중원重源, 호 : 석정石亭)

    성질이 근후(勤候)하였으며 뜻은 경제에 밝았다.

     

호진(祜鎭, 1772.12.21 ~ 1835.11.28, 초휘 : 진익, 자 : 성필聖弼)

    대구향교 도유사 역임.

     

영진(永鎭, 1785.12.12 ~ 1855.2.9, 초휘 : 서진, 자 : 치수穉修, 호 : 둔암遁巖)

    천자(천성)가 영오(穎梧, 영리하고 민첩함)하여 학식이 굉박(심오하고 깊이가 있음)하고 천리(踐履, 실지로 몸소 행함)가 단정(斷定, 딱 잘라서 결정함, 철저)하여 망중산(많은 사람 중에)  이름이 우뚝 높았다.

    족손 지헌공이 유사를 찬(贊, 남의 아름다운 행적을 기리는 문제의 한가지, 즉 글을 씀)하였다. 유문집이 있다.

     

진삼(鎭參, 1749.8.1 ~ 1841.7.7, 초휘 : 임)

          가선대부

 

정진(廷鎭, 1769.11.20 ~ 1817.10.23, 초휘 : 서진, 자 : 유서, 호 : 졸수재, 오일암) 유문집

    효우가 집안에서 뛰어 났으며 문장이 세상에 들어났다. 백불암선생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또 정립제 문하에도 배웠다.

    정조 을묘년(1795)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순조 계해년(1803)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임금이 친히 시험지 뒤에 글씨를 쓰시기를 문체가 혼후하니 가히 덕스러운 그릇임을 알 수 있다.

    승정원 정좌와 성균관 전적을 지냈으며, 통훈대부에 올라 태사령에 제수되니 물망이 조정에 들어 났다.

    3종손 경산공이 행장에서 예찬하였다.

     

봉(鳳, 1773.1.25 ~ 1822.4.22, 자 : 채서采瑞)

    자성(自省, 제 스스로 저를 돌아봄)이 단결(철저)하고 효우의 행실이 있으니 종족들이 흠송(흠모하고 찬(贊, 남의 아름다운 행적을 기리는 문제의 한가지, 즉 글을 씀)함)하였으며, 재종숙 만문공이 말하기를 효우 두 글자는 우리집에 전해오는 법인데 그대가 계속해왔다. 유유고가 있다.

     

학( , 1775 ~ 1849.12.20, 생부 : 진규, 자 : 열경悅卿, 호 : 석정石亭)

 

왕(汪, 1796.12.16 ~ 1884.3.21, 초휘 : 괄, 자 : 숙심叔深)

    통정대부 행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

     

급(汲, 1827.1.9 ~ 1885.1.10, 초휘 : 혈, 자 : 사흡士翕, 호 : 춘계春溪)

    경서(經書, 옛날 중국의 성인과 현인들의 가르침을 기록한 책 이름의 총칭)와 예문(禮文, 예법의 명문), 수리의 학문에 밝았다. 유유고가 있다.

     

로(潞, 1803.3.11 ~ 1823.1.9, 초휘 : 양, 자 : 백영伯英, 통덕랑)

    효우와 행실이 보통사람보다 뛰어남.

     

항술(恒述, 1807.6.22 ~ 1870.2.28, 초휘 : 한오, 자 : 경중敬仲, 호 : 지은智隱)

    품성이 순미하고 침착 엄중하여 지헌공 문하에 수학하여 여러번 찬(贊, 남의 아름다운 행적을 기리는 문제의 한가지, 즉 글을 씀)을 받았다. 유유고가 있다.

     

국술(國述, 자 : 자강, 호 : 고재, 일휘 : 곤술)

    문헌으로 고재집이 있다.

     

택술(宅述, 1824.2.19 ~ 1888.4.15, 자 : 윤부潤富, 호 : 지암智菴)

    문사와 효행이 사림에 추중되었다. 유유고가 있다.

     

지술(智述, 1830.3.14 ~ 1912.8.10, 자 : 덕겸德兼)

    통정대부 중추원 의관

     

병술(炳述, 1837.8.12 ~ 1910.9.13, 자 : 덕칠德七)

    가의대부 중추원 의관, 노소눌(상직)묘갈찬

     

운한(雲漢, 1880.2.10 ~ 1959.7.17, 자 : 순부順夫, 호 : 만송당晩松堂)

    대구향교 교수 역임, 신유대동보 편찬위원

     

명곤(命坤, 1825.4.6 ~ 1882.4.19, 초휘 : 운익, 자 : 순거順擧, 호 : 감삼재感三齋)

    지헌공 문하에서 수업, 유유고가 있다.

     

명태(命泰, 1837.6.6 ~ 1912.2.16, 초휘 : 운영, 자 : 능거能擧, 호 : 노호老湖)

 

동교(東敎, 1863.11.26 ~ 1943.2.2, 자 : 春一)

    성품이 엄정하였으며 위선사업에 힘쓰다.

     

창교(昌敎, 1877.7.11 ~ 1959.2.29, 자 : 문여文汝, 호 : 지은智隱)

    성품이 온유하고 위선사업에 힘씀.

     

학교(鶴敎, 1867.10.13 ~ 1934.10.27, 일휘 : 인교, 자 : 한여翰汝, 호 : 고와顧窩)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있어 여러 방면에 뛰어 났으며, 글을 읽고 뜻을 강하하였으며, 집을 다스리고 몸을 바로잡아 유림의 사표가 되었다.

    족대부 고재 곤술이 행략을 찬(贊, 남의 아름다운 행적을 기리는 문제의 한가지, 즉 글을 씀)했으며, 소암 김현동이 행장을 찬(贊)하였으며, 근제 정지순이 묘갈을 찬(贊)하였다.

     

국교(國敎, 1876.3.12 ~ 1957.7.29, 일휘 : 삼교, 자 : 정립政立, 호 : 제강霽岡)

    어려운 사람을 보살피고 널리 베풀었으며, 여러 사람들의 병고(병)를 고쳐주니 고을 사람들이 추중하였다.

     

재교(在敎, 1877.9.21 ~ 1928.2.17, 자 : 관오寬五)

    주사를 지냈으며, 선조(先祖, 조상) 받들기를 정성으로 하고, 친족을 대하기를 의리로 하였으며, 다천정을 중건하고 토지를 내어(기부) 중종에서 사용하도록 하였다.

    문헌으로 다천실기를 간행하였으며 유고가 있다.

     

권교(權敎, 1852.8.25 ~ 1930.5.10, 자 : 자삼子三)

    통정대부겸 이조참판 훈2등

     

순교(舜敎, 1906.3.3 ~ 1992.5.13, 호 : 율산栗産)

    서기관, 경상북도 내무국장 역임

     

종원(鐘元, 1886.12.1 ~ 1939.8.5, 자 : 처회處晦, 호 : 성암醒庵)

    검신제가(절약하여 집안을 잘다스림)하여 여러 유림의 추중을 받았음.

     

종욱(鐘旭, 1898.8.27 ~ 1965.1.21, 자 : 락원樂元, 호 : 소와)

    백부 고와 선생 문하에서 수학 하였으며 학행과 문사가 유림의 추중을 받았음.

     

종호(鐘浩, 1918.12.3 ~ 1987.8.15, 자 : 락원樂遠, 호 : 우련友蓮)

    한학자, 민선지방의원 의장 역임

     

     

    알리는 말씀

    선조에 관한 소개를 하고 있으나, 한문으로 된 족보를 알기 쉽게 풀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린이, 학생 그리고 신세대가 이해하기 쉽도록 문장을 풀어보지만 문맥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등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질문도하고 답도 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방적인 전달의 내용은 지양(삼가하여야 함)되어야 합니다.

    선조를 아는 것도 생활 예절을 배우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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