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공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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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문창후 고운 선생 영정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5호 (1990. 12. 15 지정),  대구시 동구 도동 766-4번지

 

시조 문창후 영정으로 동구 도동에 있는 문창공 영당에 봉안되어 있다.

재료는 극채색 견본이며 사용된 색채는 9종이다.

전신좌상으로 신선경을 배경으로 바위 위에 앉아 있고 좌우에 책을 두고 있는 신선도계열 화풍의 민화이다.

문창후의 영정은 이제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리산 쌍계사본과 가야산 해인사본을 들 수 있다.

선생의 옛 소요지인 이 두 고찰에 보관되던 영정은 영호남의 유림에서 공의를 일으켜 1783년(정조 7년)에 쌍계사의 것은 호남 태인의 무성서원으로 옮겨 고종때 이를 개모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고, 해인사의 것은 청도 및 대구지방으로 옮겨서 봉안하다가 무성서원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그림이 퇴색하여 거의 같은 시기에 개모하였다.

본 영정은 후손인 최흥원(1786∼1871)이 1865년 경상감사의 도움을 받아 동구 지저동에 있는 계림사에 봉안하였으나, 이곳에 비행장이 들어서게 되자 1912년 현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16호인 청도 계동사의 고운영정과 비교해 볼 때 청도의 것은 중국풍의 문인상 형식을 취한 민화로 1882년 개모된 것이고, 본 영정은 신선상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청도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약 20년정도 빨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문창공영당(文昌公影堂)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0호 (1989. 8. 10 지정), 대구시 동구 도동 766-4번지

 

 

불로동에서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1㎞정도 가게 되면 경부고속도로를 만나게 된다. 이 고속도로의 밑을 지나 우측으로 약 500m정도 가면 천연기념물 제1호인 달성의 측백수림이 울창한 숲을 이룬향산의 남쪽 사면에 문창공영당이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최치원 선생의 영정을 모시기 위하여 1912년에 그의 후손들이 세웠으나 그들의 시조가 남긴 위업을 후손에게 전하는 목적외에도 이름난 선현의 영정을 모심으로써 망국의 한을 씹고 있던 백성들에게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해 세웠다 한다. 장방형으로 둘러쌓인 담장안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중앙칸의 박공이 좌우 양쪽보다 한단 높게 되어 있다.

구조는 3량가로 낮은 기단위에 원주형 높은 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운 익공계이며, 건물 전면에는 각 칸마다 두짝의 여닫이 골판문이 달려 있다. 영당앞에는 출입을 위한 정면 3칸의 솟을외삼문이 있다. 삼문의 각 칸에는 두짝의 대문을 달고 거기에 태극문양을 그려 놓고 있어 건물을 짓게 된 경위를 잘 보여준다 하겠다.

이 건물은 文昌公(문창공) 崔致遠(최치원)의 眞影(진영)을 奉安(봉안)한 影堂(영당)이다.

1755년(英祖, 영조 31) 創建(창건)한 이래 1864년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되어 桂林祠(계림사)로 낮추어 불러오다가 1910년 庚戌國恥(경술국치)를 당하자 慶州崔氏(경주최씨) 匡靖公派(광정공파) 후손들이 奉先(봉선)의 뜻과 民族精氣(민족정기)를 살리기 위해 퇴락한 桂林祠(계림사) 건물을 현위치로 移轉(이전)하고 三門(삼문) 솟을大門(대문)에 太極(태극)을 그려서 守護(수호)하였다. 1912년 인접한 九會堂(구회당)과 함께 完工(완공)하였다.

 

崔致遠(최치원, 857, 신라憲安王(헌안왕1∼?)은 新羅末期(신라말기)의 文章家(문장가)로 호는 孤雲(고운) 또는 海雲(해운), 12세에唐(당)에 유학, 17세때 과거에 급제하여 宣州 水縣尉(선주율수현위)를 거쳐 承務郎侍御史內供奉(승무랑시어사내공봉)이 되어 紫金魚袋(자금어대)를 下賜(하사) 받았다.

唐(당) 僖宗(희종) 6년 黃巢亂(황소란)때 黃巢檄文(황소격문)을 써 이름을 떨쳤고 884년 28세때 귀국, 阿餐(아찬)벼슬에 이르렀으나 亂世(난세)가 됨에 各地(각지)를 유랑하다가 海印寺(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고려 顯宗(현종)때 內司令(내사령)으로 贈職(증직)되고 1020년 고려 顯宗(현종, 11) 文昌侯(문창후)의 諡號(시호)를 내렸으며, 成均館(성균관)과 전국 鄕校(향교)의 大成殿(대성전)에 配享(배향)되어 從祀(종사)토록 하였다. 桂苑筆耕(계원필경)등 다수의 文集(문집)과 글을 남겼다 한다.

건물은 圓形礎石(원형초석)위에 圓柱(원주)를 柱上(주상)에는 柱頭(주두)를 놓았으며 쇠서받침에는 蓮花紋(연화문)이 복잡하게 조각되어 있다. 솟을지붕에는 柱上(주상)의 大樑(대량)위에 짧은 기들을 세우고 柱頭(주두)를 鳳頭(봉두)와 翼工(익공)장식을 하여 마치 重層(중층)처럼 꾸몄다.

 

 

상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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