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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후 매국노는 일본간첩으로 된 대학교 문과쪽 교수자들이었다
최훈영  2006-12-09 07:40:16, 조회 : 1,952, 추천 : 313

광복후 매국노는 일본간첩으로 된 대학교 문과쪽 교수자들이었다


자기 나라땅을 돈받고 팔아넘긴 사례가 생겼다. 그것이 세계사에 기록되었다. 만고에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놈들을 코리안 배달겨레가 매구노(賣國奴)라고 적고는 매국놈이라고 읽었다. 매국노가 일본돈을 받고, 조선돈도 받고 이중으로 받았다. 일본왕이 주는 돈을 은금(恩金)이라고 했고, 은금을 받는 놈들은 그 돈을 은사금(恩謝金)이라고 했다. 일본왕이 89인에게 일본돈을 은금으로 주었다. 부왜역적 89놈이 모두 로론당(老論黨) 출신이었다

1945년 8월 15일 낮 12시에 왜왕이 라디오 앞에서 <우리 일본국이 조건없이 련합군에게 항복합니다>라고 했다. 항복방송을 들은자팬 일본사람이 울면서 봇짐을 싸서 부산항구에 모여들어서 배를 타고 회소(回巢)했다. 1945년 9월 8일에 아메리카군이 인천항구에 들어왔다. 9일에 아메리카 중장 하지가 서울에 들어와서 미궁정청을 열고 자신이 사령관이 되어 시무식을 했다. 9월 10일에 일본총독 아부신행(阿部信行)이 경무대 총독관사에서 봇짐을 싸서 일본으로 달아났다.

코리안 배달겨레를 다스렸던 마지막 총독 阿部信行이 일본으로 돌아가서 코리안을 다스리는 사업안을 제출했다. 그것이 국책사업으로 채택되었다. 그 국책사업이 무엇인고 하니, 일본을 리롭게 기록하는 우리 친일인을 대학교 교수자에서 구해서 일본돈을 연구비로 주는 일이었다. 阿部信行이 패전후 코리안 가운데 <우리 친일인>이 될 수 있는 사람 이름을 제출했다. 자기나라를 팔아먹을 매국노 이름을 적어서 제출한 것이다. 자팬 쪽에서 말하면 <우리 친일인>이고, 코리안 쪽에서 말하면 매국노로 되어 <일본고정간첩 대학교 교수자>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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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후 대학교 문과 쪽 교수자에서 일본간첩이 많이 나왔다. 일정한 직업(대학교 교수자․언론인 문화재위원)을 가지고 일본돈을 먹고 그 값으로 일본이 시키는대로 글을 지어서 발표하는 놈을 <일본고정간첩>이라고 한다. 나라와 겨레를 배반하면서 일본을 리롭게 글을 짓는 일본앞잡이를 <일본고정간첩>이라고 한다. 광복후 일본간첩 98 퍼센트가 대학교 교수자들이다. 일본이 이들 교수자들한테 일본돈을 주면 그 돈을 받은 사람이 간첩행위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간첩행위가 앞에 있고 돈을 뒤에 받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지난날, 조선침략자 이등박문(1841~1909)이 일본돈을 조선국 대신에게 주고 조선땅을 사자는 계략을 세웠다. 조선국 대신들 머리속에 나라가 없고, 머리속에 <돈먹기>가 들어 있다는 것을 박문(博文)이 알아 내었던 것이다. 박문계략(博文計略)이 진행되어 경술년에 나라땅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당시 선비들이 부왜역적 완용놈 들 89 놈을 매국노(賣國奴)라고 적고는 <매국놈>이라고 읽었다. 리완용 무리 89 놈이 일본돈을 받고 나라를 팔아넘겼던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전 국치를 씻으려고 다시 이등박문 계략을 실행한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이후 머리속에 나라가 없는 사람이 대학교 교수자라는 것을 일본이 또 알게 되었다. 자팬 일본국 총리 小泉이 이등박문 위패 앞에 절을 올리려고 야스쿠니 귀신집(神社)을 찾아가게 된다. 패전후 이등박문 보호가 자팬 일본 국책사업으로 되고 있다. 대학교 문과 쪽 교수자들이 <일본돈 먹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광복후 <매국노>가 <일본간첩 대각교수자>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연세대학교에 일본돈이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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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945년 8월 15일을 패전국치일로 삼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그들이 코리안 일본간첩에게 요구하는 것이 <일본쪽 력사용어>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1. <광복>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독립>이라는 말을 사용하 라. <광복>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우리 일본이 지급하는 연구비를 중지하게 된다

2. <실국시대>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일제시대>라는 말을 사용하라. <일제>라는 말이 꼭 들어가야 된다. <실국시대>라는 말을 사용하면 우리 일본이 지급하는 연구비를 중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어떤 맥국노 간첩이 <일제강점기>라는 말을 조작하여 내어놓았다. 나는 그 놈을 찾고 있으나, 아직 찾지 못했다.

3. <실국조약>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합방>, <합국>, <병합>, <합병>이라는 말을 사용하라, <실국>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우리 일본이 지급하는 연구비를 중지하게 된다

4. <을사륵약>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을사보호조약>, <을사조약>이라는 말을 사용하라. <을사륵약>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우리 일본이 지급하는 연구비를 중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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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후 <일본고정간첩 제1호>가 서울대학교 교수자 리희승(1896~1989)이었다. 경술년(1910) 8월 29일에 배달겨레는 나라를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울면서 통곡했다. 이것을 경술실국(庚戌失國)이라고 한다. 일본은 <일본이 한국을 병합함>이라는 뜻으로 일한병합(日韓倂合)이라고 했다. <병합>이라는 말뜻은 <흡수>라는 말로 된다. 리희승(李熙昇)은 <한국이 일본국을 합했다>라는 뜻으로 한일합방(韓日合邦)이라는 미친놈 소리를 조작해서 자기가 지었다고 하는 <국어사전>에 넣었다. 리희승은 新村出이 엮은 일본말백과사전인 <廣辭苑>을 그대로 베끼기 하고서 리희승 편저라고 했다. 리희승이 사기꾼이 된 것이다. <失>을 <合>이라고 한 사기꾼, 그 시발자가 리희승이었다. 리희승이 살아있을 때 내가 리희승을 일본간첩으로 고발했다. 4년 동안 리희승이 고치지 아니하다가 죽었다. 리희승이 일본돈을 받고 일본을 리롭게 기록했기에 고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계약서 단서를 내가 가지고 있다.

◑<일본고정간첩 제2호>가 서울대학교 교수자 리병도(1896~1989)였다. 1986년 6월에 우국지사 김세환(金世煥)옹이 리병도(李丙燾)를 일본고정간첩으로 서울 검찰청에 고발했다. <단군을 신화>라고 했던 경성제국대학 교수자 今西龍 용어를 리병도가 자기가 지은 <한국사>책에 실었기에 일본간첩으로 고발된 것이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륵약>을 리병도가 자기가 지은 <한국사>에서 <을사보호조약>이라고 했다. 또 <경술실국>을 리병도가 <한일합병>이라고 했고, <리씨왕조>라고 했다. 나는 리병도를 일본간첩 제2호로 발표했다.

◑<일본고정간첩 제3호>가 리기백(1924~)으로 된다. 리기백(李基白)은 자기가 지은 <한국사> 책에서 <을사조약>이라고 적었고, <한일합방>이라는 일본간첩용어를 사용했다. 나라사이 서로가 합의한 것을 <○○조약>이라고 한다. 이등박문이 억지로 만든 륵약(勒約) 소식을 듣고 목숨을 끊은 대신 제1호가 리한응(李漢膺)이고, 제2호가 민영환(閔泳煥)이고, 제3호가 죠병세(趙秉世)이고, 제4호가 홍만식(洪萬植)이고, 제5호가 송병선(宋秉璿)이다. 순국한 차례가 그러했다. 나라가 망했다고 목숨을 끊어서 륵약을 무효로 만들고자 했던 순국렬사가 있었는데 그 륵약을 <을사조약>이라고 말하는 놈을 코리안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리병도 제자 리기백(李基白)은 <을사조약>이라는 일본간첩용어로 <한국사>를 지었다. 일본 사람이 지은 론문을 리기백은 <한국사>에서 많이 인용하고 있다.

◑<일본고정간첩 제4호>가 서울대학교 교수자 신용하(1937~)였다. 신용하(愼鏞廈)는 1976년에 <독립협회연구>라는 책을 내었다. 신용하는 <독립신문>을 읽어보지도 아니하고, <독립협회연구>라는 책을 내었다. <독립신문 영인본 6책>이 1970년에 출판되었다. 나는 1970년부터 <독립신문 6책>을 읽기 시작해서 10년 걸려서 모두 읽고, 1991년 10월에 <부왜역적기관지 독립신문 연구>라는 책을 내었다. 이듬헤 1992년 8월에 형설출판사가 <고종시대 독립신문>이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나는 2002년 2월 <나라잃은시대 동아일보>라는 책 부록에 <신용하가 일본고정간첩이 되어 <독립협회연구>라는 책을 지었다>는 것을 고발했다. 일본간첩 아메리칸 필립재슨을 신용하는 서재필이라고 하면서 애국자라고 했고, 독립협회 회장이 리완용인데, 완용 이름을 끝내 감추고 독립협회를 애국단체라고 기록했다. <청국에서 독립하여 일본애 붙자>고 외쳤던 단체가 리완용이 이끄는 독립협회였다. 신용하는 거짓말을 하다가 나에게 발목이 잡혔던 것이다.

◑<일본고정간첩 제5호>가 서울대학교 교수자 심재기(1938~)였다. 심재기(沈在箕)는 리희승 제자로 국립국어연구원장이 되어 <표준국어사전>을 만들었다. <경술실국>이라고 말해야 될 것을 한일병합(韓日倂合)이라는 미친놈 소리를 적어넣었다. <한일병합>은 <한국이 일본국을 흡수함>으로 된다. 나는 심재기를 일본고정간첩으로 고발했다. <표준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를 물었으나 답이 없다. <국립국어연구원>을 폐기처분하고, <국립 배달말 심의원을 차려야 한다>고 나는 주장하고 있다.(2004 배달겨레 문화사 부록)

◑<일본고정간첩 제6호>가 국민대학교 명예교수자 죠동걸(1932~)이었다. 죠동걸(趙東杰)은 <경술실국>이라고 말해야 될 것을 한일강제합방(韓日强制合邦)이라는 미친놈 소리를 글로 지어서 일본에 제출했다. 내용인즉 죠동걸이 자팬하고 공동교과서를 만든다고 나섰다. 죠동걸이 코리아쪽 공동대표자가 되었고, 고려대학교 교수자 죠 광(趙 珖)이 총 간사가 되었다. 죠동걸이 양여인 give라는 뜻을 모르다가 보니, <한일+강제+합방>이라는 미친놈 소리를 조작하여 자팬 쪽에 내어 놓았다. 국제망신을 당했다. 죠동걸은 강제(强制)라는 말이 일본말인지를 몰랐다. 죠동걸과 죠 광은 <실국조약>을 읽어보지 아니했기에 <강제>라는 미친놈 소리를 사용한 것이다. 죠동걸이 말한 <한일+강제+합방>이라는 말은 <한국과 일본국이 합하지 않으려고 하나, UN국제련합이 강제로 합방하라고 해서 합하게 된 것>이라는 뜻으로 된다. 나는 죠동걸과 죠광을 일본고정간첩으로 고발했다. 일본과 공동으로 력사연구를 하자는 것이 돈을 먹으려고 하는 계략이다. 나라끼리 공동연구를 하는 것이 <수학> 하나 뿐으로 된다. <失>을 <合>이라고 말하는 놈은 사기꾼으로 된다. 사기꾼이 대학교 교수자로 되어서는 안 된다.

◑<일본고등간첩 제7호>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승조(韓昇助)가였다. 고발되었다. 한승조는 일본잡지에 일본찬양글을 자어 기고했다. 한승조는 일로전쟁(日露戰爭)이라고 말했다. 일본간첩은 일청전쟁(日淸戰爭)이라고 말하고, 일로전쟁(日露戰爭)이라고 말한다

◑<일본간첩 제8호>가 이등박문을 보호하고 있는 일본간첩 문화 재위원이다. <大安門> 바로잡기를 막고 있는 문화재위원이 일 본간첩이다. 뒤에 이름을 밝힐 것이다.

◑<일본고정간첩 제9호>가 서울대학교 교수자 리영훈(1949~)이 다. 리영훈(李榮薰)은 8월 15일 광복절을 없애자고 했다. 국정 원에 고발되었다.

◑<일본고정간첩 10호>가 서울신문사 정일성(丁日聲)이다. <도쿠도 미 소호>라는 책을 출판했다. <한일합방>이라는 미친놈 소리 로 책을 쓴 것이다. 국정원에 고발되었다.

◑<일본귀족家人 리구>가 일본에서 죽었다. <일본설계사 리구>를 <황세손>이라고 거짓말하고, <왕관>에 넣어서 땅에 묻었다. 사기행각이었다. 문화재청장 유홍준(兪弘濬)과 문화재 사적위원장 한영우(韓永愚)가 지도자로 일했다. 일본이 지시한 것을 두 사람이 협조한 것으로 의심이 갔다.

려증동/경상대 명예교수/배달학


날짜: 2006년 11월 30일
작성자 : 려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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