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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승만 앞잡이 정치깡패
최훈영  2006-11-11 17:21:43, 조회 : 2,068, 추천 : 326

리승만 앞잡이 정치깡패


<리승만 앞잡이>, <리승만 앞잡이 정치깡패>라는 말이 <4.19의거문>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이었다. 이 말을 풀어야 할 차례가 되었다.

대통령 윤보선 시대 <第二共和國樹立 記念刊 民主韓國 四月革命靑史>라는 책이 1961년 3월에 발행되었다. 第六章이 <독재정권의 붕괴>로 되었다. 쪽474에 나오는 글을 여기에 옮겨 둔다.

<1960년 3월 15일, 선거일이 가까워 오자 자유당의 행패는 더욱 심해져 갔다. 서울에선 리정재(李丁載)와 곽영주(郭永周)가 지휘하는 깡패들이 반 자유당계 인사의 등록을 방해하여 곳곳에서 폭행을 하였다. 심지어 영등포에서는 취재하는 신문기자까지 구타했다. 림화수(林和秀)는 이와 합세하여 강제로 조직한 반공예술인단(反共藝術人團)을 동원하여 자유당 선전에 앞장섰다. 배우들에게 출연료를 주지 않고 제작한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을 전국 각지에 순회 상영시켜 리승만 선전에 온 힘을 다 기우렸다. 그러나 이 영화가 <四월혁명>의 시작이 된 <데모>를 가르친 격이 되었으니, 야릇한 운명이라고나 할까. 소매치기 출신인 림(林)은 미래의 문교장관(文敎長官)을 꿈꾸면서 리정재와 곽영주와 긴밀히 맺었다. 이들 三人은 기회 있을 때 마다 연약한 녀배우(불응한 녀배우도 있었다)를 불러다 노리개로 삼았던 것이다.

경찰의 비호를 받은 깡패들의 행패는 려수와 광산에서 민주당원 살인사건을 야기케 하였다. 더욱 반공청년단에 가입된 이들 깡패는 반공이란 명분을 내 세우고 안하무인(眼下無人) 격으로 놀아났다. 광산 살인사건의 주범(主犯)은 반공청년단 핵심단장(核心團長)이었던 것이다. 단장 신도환(辛道煥)은 무소속을 가장하여 대구서 민의원에 당선된 후 정체를 들어내어 깡패와 민주역도(民主逆徒)의 두목이 되었던 것이다.

동대문시장을 중심으로 한 깡패의 두목 리정재(李丁載)와 리승만의 경호원으로 별정직 치안국장이란 별명을 가진 곽영주(郭永周)와 소매치기 출신으로 특무대 끄나풀이었던 림화수(林和秀)와 효자(孝子)라고 선전하여 죽은 어머니를 팔아 민의원이 된 신도환(辛道煥)등 四인은 3.15선거를 전후하여 부정선거의 선봉대로 활략하였다. 이러한 란동(亂動) 속에서 자유당이 각처에 뿌린 부정선거 자금은 공무원과 경찰 및 반공청년단에 지급한 돈을 포함하여 약 70억환에 달하였다. 이 중 일부는 원흉(元兇)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가 부정축재(不正蓄財)되었다.

이 흉악한 무리들의 만행과 병행하여 한국의 지성이라는 문화인들의 일부도 부정선거에 한목 끼어 들었다. 리은상(李殷相)과 김말봉(金末峰) 이 전국유세(全國遊說)를 하면서 리승만과 리기붕의 선전에 골몰하였고, 문단의 대 선배인 박종화(朴鍾和)는 글로 역도에게 아부하였다. 박종화의 곡필(曲筆)을 읽은 한 대학생은 분개한 나머지 혈서(血書)를 써 눈물로 반성을 촉구했다. 이외에도 김종문(金宗文), 리영순(李永純), 김송(金松), 김동리(金東里) 등 허다한 문인이 인간만송(人間晩松)을 찬양하여 만송족(晩松族)이니 카오스(곡필을 실은 잡지이름) 파니 하는 이름으로 빈축을 샀다. 경희대학교 총장인 죠영식(趙永植)은 리기붕을 찬양하는 글을 <서울신문>에 발표하여 학생들의 격분을 샀다. 이들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무리들은 10만원에서 수백만원의 보수를 받았다고 한다. 어떤 大家는 찝차까지 선사받았다. 일생을 문학에 바쳐 수 많은 문하생(門下生)을 갖고 있던 대가들은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인하여 제자와 명성을 아울러 잃고 말았다>. <第二共和國樹立 記念刊 民主韓國 四月革命靑史>

◑리은상은 리승만, 리기붕을 찬양하는 유세를 전국으로 돌면서 했다. 그 뒤 리은상은 4.19의거에 순국한 렬사 묘비에 비글을 지었다. 이런 사람을 공자가 향원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을 아메리칸이 싫어한다.

◑리승만 시대 소매치기 출신 림화수가 반공예술단장이 되어, 문교부장관이 되려고 했다고 한다. 이것이 리승만시대를 한마디로 말하는 자료로 되었다.

◑리승만 시대에 <리승만, 당신은 리완용계렬이다. 물러나야 되겠다>고 말한 사람이 선비로 된다. 리승만 시대 선비는 심산(心山 金昌淑 1879~1962)선생 한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실국시대(失國時代)에는 선비가 있었건만, 리승만 시대에는 향원으로 가득찬 세상이 되었다.

◑심산이 존모한 사람이 차이나 송나라 말기 충신 문천상(文天祥1236~1282)이었다. 문천상 호가 文山이다. 문천상이 의병을 일으켜 원군(元軍)에 대항하다가 사로잡혔다. 항복하면 살려준다고 했다. 문산이 옥중에서 <正氣歌>를 지었다. 감옥살이 3년에 처형되었다. 대인군자가 되려고 하면 존모하는 사람을 밝혀야 한다. 리승만은 존모했던 사람에 리완용을 쓰자하니, 쓸 수가 없었다.

려증동/경상대 명예교수/배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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