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최씨 광정공파 / 다천공(다천부군)파

 바른말 고운말의 생활예절, 가족간의 호칭촌수

시작최치원문헌소개다천부군파보지묘파자료실계촌법경주최씨 다천공파 게시판생활예절의 규범과 에티켓

[촌수의 정의] [촌수의 이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계몽사백과] [두산세계대백과] [직계는 1촌] [계촌법 자료실] [성균관 질의회신]

올바른 계촌법잘못된 계촌법계촌법 자료실친척간의 호칭경주최씨 분파/지파교과서(초등학교)교과서(중학교)

민법의 정의 l 신문기사01 l 신문기사02 l 민족문화사전 l 려증동 교수의 특별 기고 l 중학교 교과서 l 족보 별첨 자료 l 오류 있는 계촌법


[짐계 선생 어록]

 로그인

리승만 박사 著라고 하는 <옥중기>는 거짓말 책이었다
최훈영  2006-11-01 11:09:12, 조회 : 2,062, 추천 : 342

리승만 박사 著라고 하는 <옥중기>는 거짓말 책이었다  


<리승만 박사 저 독립정신>이라는 책이 一名 <獄中記>라는 부제(副題)가 붙었다. 단기 4280년 2월 초판발행. 4283년 3월 재판발행. 발행인이 李軒求로 적혀 있다. 단기 4280년이 1947년이다. 리승만이 대통령으로 된 것이 1948년이었으니, 이 거짓말 책이 리승만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렸다.

<獨立精神重刊에 부치는 말슴>이 책머리에 나오고 그 끝에 단기 4278년 11월 12일 李承晩識로 적혀 있다. 1945년 11월 12일에 쓴 것으로 된다. 거짓말 부분을 고딕으로 표기한다.

×<余가 감옥에서 7년을>........○<내가 감옥에서 5년을>
×時에 李商在 兪星濬선생과 同窓에 拘囚되어...此書를 쓸적에 獄中에서...余가 渡美한 후 同窓拘留되였든 親信友였던 朴容萬씨가 此書 원고를 투렁크 밋창에 감초어 가지고 와서 차서를 印刊발행하니

◑리상재(李商在1860~1927)는 감옥에 간 일이 없다. 리상재 이력서에서도 거짓말로 적혀 있다. 리상재는 리완용(1858~1926) 보다두 살 아래이나 리완용 부하처럼 따라 다녔다. 리완용을 모시고 일본에 갔다. 리승만1875~1965)은 리상재보다 15세 아래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리상재는 부왜역적단체인 독립협회 부회장을 했다. 초대의장이 리완용이였고, 제2대 독립협회 회장이 리완용이였고, 제3대 회장이 윤치호였고, 제4대 부회장이 리상재였다.
◑유성준(兪星濬)은 유길중(兪吉濬1856~1914) 아우이다. 형 유길준이 민비를 시해한 역적으로 체포령이 내렸다. 유길준이 일본으로 달아났다. 아우 유성준이 류배죄인(流配罪人)으로 되었다가 1905년 5월 9일에 풀려났다. 이것은 감옥살이가 아니고, 벼슬살이로 나설 수 있다는 명방(命放)이다.

◑박용만(朴容萬1881~1928)은 감옥살이를 한 일이 없다
☆ ☆ ☆ ☆ ☆ ☆ ☆ ☆
리승만 감옥살이는 <고종실록>에 자상하게 실려있다. 독립협회 초대의장이 리완용이었다. 제2대 독립협회 회장이 리완용이었고, 제3대 독립협회 회장이 윤치호였고, 제4대 독립협회 부회장이 리상재였다. 독립협회를 만든 사람이 일본간첩 필립재슨(19세 서재필)이었다. 청국에서 독립하여 일본에 붙자고 만든 단체가 <독립협회>였다. 리완용이 독립협회 회장을 할 때 리승만은 독립협회 청년부원이었다. 독립협회 회장단은 모두 부왜역적으로 놀았다. 독립협회가 주최하여 1898년 11월에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청년부원 리승만이 연설을 했다. 핍박하는 말하기로 왕을 욕했다. 과천군수 길영수가 연단에 올라가서 리승만을 끄잡아 내렸다. 리승만이 군수 길영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이 사건에서 리승만이 어핍지존(語逼至尊) 무군지죄(無君之罪)에 걸려서 1899년 1월에 감옥에 들어갔다. 왕이 특지로 잡아가두라고 한 것이었다. 비애왕이 청년 리승만을 미워했다. 리승만 아내 박씨부인이 진정서를 들고 다녔다.

최정식(崔廷植), 리승만, 서상대(徐相大), 세 사람이 감옥살이 同房囚인으로 살았다. 최정식 역시 어핍지존죄에 걸렸고, 서상대는 잡범으로 일하는 죄수였다. 어떤 사람이 서상대를 찾아와서 <나는 최정식집에 기식하는 사람(崔鶴周 假名)이다. 권총 두 자루를 맡기노니, 최정식․리승만에게 전해 주라>고 하고 갔다. 그 권총으로 감옥소 담장을 뛰어 넘었다. 최정식이 앞에 서고 그 뒤에 서상대가 서고, 마지막에 리승만이 섰다. 최정식이 제일 앞에 서서 권총을 세발 쏘았다. 감옥지키기 김윤길(金允吉)이 등에 맞았다. 서상대는 권총이 없이 두 번 째로 섰고, 권총이 있는 리승만이 제일 뒤에 섰다. 리승만은 곧장 병정에 잡혔다. 서상대는 끝내 잡히지 아니했고, 최정식은 증남포에서 잡혔다.

리승만은 곧 잡혀서 다시 감옥방으로 들어갔다. 최정식은 뒤에 잡혀서 들어왔다. 최정식은 교수형으로 죽었고, 리승만은 종신징역에 곤장 100대를 맞고 복역했다. 1904년 이등박문이 러시아를 이긴 기쁨으로 리승만을 특사시킨 것이다.

<옥중기>가 아닌 <연설집>으로 되었다. <나 리승만>이라는 말이 없는 연설집이다. <김철수 저>라고 해도 되고, <라만달 저>라고 해도 되는 책으로 되었다. 이런 책은 만고에 없다. 리승만이 지었다고 하는 <獄中記> 목록을 보기로 하자

서문
총론
1 각각 졔책망을 깨달음.............2 직책을 행치 못하면 화를 당함
3 백성이 힘쓰며 될일...............4 마암속에 독립을 굿게 함
5 각국과 상통하난 관계.............6 독립과 즁립의 분간
7 백성이 열니지 못하면 나라를 보전치 못함.
8 자쥬권리의 긴즁함..................9 쳔디 리치의 대개
10 륙대쥬의 구별......................11 오색인종의 구별
12 새 것과 녜ㅅ것의 구별.............13 세가지 정치구별
14 미국백성의 권리구별................15 미국의 독립한 사젹
16 미국독립 선고문.....................17 미국남북방 젼쟁사젹
18 법국변혁한 사적.....................19 헌법정치의 효험
20 정치를 변치 안이하난 손해..........21 정치제도가 백성졍도에 달님
22 백셩의 마암이 몬져 자유할 일.......23 자유권리의 방안
24 대한의 독립래력.....................25 청국의 완고함
26 일본이 흥왕한 사적..........27 아라사의 졍치래력
28 셔향형세가 동으로 벗어옴............29 일본이 조선과 통하려 함
30 일본과 처음으로 통상함......31 임오란리의 관계.
32 갑오젼 한일청 삼국의 관계..........33 갑신란리의 사적
34 공사를 처음으로 보냄.................35 갑오전쟁의 근인
36 갑오전쟁후 관계..................37 아라사의 세력이 료동에 침범함
38 청국 의화단의 사변...............39 일아전쟁의 근인
40 갑오을미 동안 대한의 정형...........41 갑오을미후 일아정형
42 젼쟁전 일아량국의 형세............ 43 일아교섭의 결말
44 일아개젼후 대한 졍형.........45 일본인의 쥬의가 전과갓지 안이함
46 청일아 삼국의 해를 밧음...........47 조흔기회를 여러번 일허버림
48 일본정부의 쥬의....................49 일본백셩의 쥬의
후록
☆ ☆ ☆ ☆ ☆ ☆ ☆ ☆
◑독립협회가 주최하여 1898년 11월에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청년부원 리승만이 연설을 했다. 핍박하는 말하기로 왕을 욕했다. 과천군수 길영수가 연단에 올라가서 리승만을 끄잡아 내렸다. 리승만이 군수 길영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이 사건에서 리승만이 어핍지존(語逼至尊) 무군지죄(無君之罪)에 걸려서 1899년 1월에 감옥에 들어갔다. 왕이 특지로 잡아가두라고 한 것이었다. 비애왕이 청년 리승만을 미워했다. 리승만 아내 박씨부인이 진정서를 들고 다녔다.

◑코리안이 모두가 아일전쟁(俄日戰爭>이라고 했는데, 리완용무리 부왜역적들은 일아전쟁(日俄戰爭)이라고 했다. 로일전쟁(露日戰爭)을 일본간첩은 일로전쟁(日露戰爭)이라고 했다. 리승만은 일아전쟁이라고 했다. 리승만은 부왜역적 리완용이 사용했던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2005년 3월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승조(韓承助)가 일본 산업신문 월간지 <正論>에 기고한 글이 일본을 앞세우는 <일아전쟁> 쪽이었다. 리완용을 지지하는 글이었다. 한승조가 일본간첩으로 고발되어 고려대학생들이 물러가라고 했다.

◑리승만(1875~1965) 감옥살이가 <고종실록>에 실리어 있다. 왕을 욕한 감옥살이였다. 리승만이 죽고난 뒤 1970년에 3책이 영인 출판되었다. 리승만이 출판하지 말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리승만은 경찰에 지시하기를 <나 리승만을 반대하는 사람을 모두 빨갱이로 묶으라>고 했다. 경찰이 그들을 불러서 여기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이 서류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경찰관이 답하기를 <보도연맹 가입원서>라고 했다. 그 수효가 5만 2천 82명이라고 한다.(조선일보.1949. 12.2). 그들은 모두 리승만시대에 산모퉁이로 끌려가 억울하게 총살당했다.

려증동/경상대 명예교수/배달학



  추천하기   목록보기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zero

경주최씨 광정공 다천공(다천부군)파, 촌수, 호칭

경주최씨 다천공파  http://dacheon.net  여러분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회장: 010-3503-1965, 총무: 010-8563-5598

홈페이지 관리자 : 010-9309-5174/ 이메일 : ecw100@nate.com
주소 : 51512,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외동반림로138번길 6(중앙동 9-4번지)

 Copyright ⓒ 2000 Dacheon.net 경주최씨 다천공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