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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최씨 다천공(부군)파 생활예절 [효도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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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시조(中始祖)
최현영  (Homepage) 2004-01-21 12:28:09, 조회 : 4,096, 추천 : 872

중시조로 되는 그 분으로 말하면 자기 아버지ㆍ어머니를 모르게 된다. 중시조 부터는 아래로 내려 오는 후손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게 된다. 시조ㆍ중시조가 받게 되는 것이 관(貫)으로 된다. 관은 살고 있는 땅 이름으로 되었다. 그렇게 되다 보니 관향(貫鄕)이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이다.

배달겨례가 성씨를 받을 때가 신라시대여서 씨(氏)로 되는 터 이름이 대충 경상도에 있는 고을 이름으로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관향이 가장 많은 텃밭이 성산(星山)이었다. 성산은 성주의 옛이름이고, 성산의 옛이름이 벽진(碧珍)이다. 벽진을 이두로 읽으면(史讀) <별>로 된다. 의성김씨(義城金氏)라고 했을 때, 성(姓)이 김(金)이고, 관향인 의성이 씨로 된다는 설이 있다.

경순왕의 아들 김석(金錫)이 의성고을 세금을 봉록으로 받아서 살았다. 그로 말미암아 그 후예들이 의성김씨로 된 것이다. 이런 경우는 봉록땅이 관향으로 되어서 봉록땅 이름을 씨라고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성씨는 대충 신라시대에 시조가 나오고, 고려시대에 중시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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