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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최씨 다천공(부군)파 생활예절 [최훈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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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왜역적/친일파
최훈영  2005-09-13 15:46:59, 조회 : 2,157, 추천 : 337

부왜역적·친일파




배달겨레 선비는 ‘일본’이란 나라가 미워서 ‘일’(日)이라는 글자를 오래도록 폐기했다. 대신 옛이름 ‘왜’(倭)를 썼다. 옛날에는 왕을 거역하면 ‘역적’으로 되었던 것이 일본 침략이 있고부터 나라와 겨레를 해롭게 한 이도 ‘역적’이라 일컫게 됐다. 일본군을 등에 업고 정변을 일으킨 ‘김옥균·홍영식·박영효·서광범·서재필’이 처음으로 나타난 ‘부왜역적’(附倭逆賊)이다. 곧, ‘갑신 5적’을 비롯한 ‘을사 5적’, ‘경술 7적’이 부왜역적이었다.

실국시대 ‘왜왕’이 저들을 도왔던 사람이라며 고맙다고 작위와 돈을 줬다. 작위와 돈을 받은 사람이 89명이었다. 작위를 받지 못한 사람이 셋이었는데, 필립 제이슨·윤치호·리용구였다. 부왜역적이 모두 92명으로 되었다. 이들은 아비가 작위를 받았거나 일본 간첩 노릇을 했거나 일진회장이었기에 마땅히 감추었으리라. 일본 사람들은 김옥균으로부터 리완용에 이르는 92명을 ‘우리 친일파’라고 부르는 것이다. 3대 독립협회장 윤치호는 1945년 8월15일 왜왕의 항복 방송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라를 팔아서 일본에 넘겼던 사람은 망국에 대한 원인행위자이기에 그 죄목이 ‘부왜역적’으로 된다. 실국시대에 일본에 붙어서 협력한 사람은 그 죄목이 ‘부일협력자’로 된다.

제 나라를 잃도록 만든 부왜역적 89명은 왜왕한테서 돈을 받았기에 89명의 재산은 몰수해야 한다. 나라잃은 시대 부일협력자는 왜왕으로부터 돈을 받은 일이 없기에 재산을 몰수할 수는 없다. 삼일운동 때 공헌했으나 안타깝게도 뒤에 변절한 최 린·최남선 들에다, 1922년부터 시작하여 38년에 발행한 총독부 <조선사> 편수에 참여한 이들이 대체로 ‘부일협력자’다. 두루 ‘사적’(史賊)이라는 별도 이름으로 불릴 사람들이다.

려증동/경상대 명예교수·배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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