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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최씨 다천공(부군)파 생활예절 [최훈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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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국조약
최훈영  2005-09-13 11:31:30, 조회 : 1,734, 추천 : 368

1910년 8월 22일에 <실국조약>

1909년 10월 26일에 이등박문이 죽었다. 하루빈 안중근 선생이 이등박문을 권총으로 폭사시킨 것이었다. 그로부터 1년 2개월 뒤인 1910년 8월 22일에 코리아땅이 자팬에 넘겨지는 실국조약(失國條約)에 완용이 도장을 찍었다. 내각총리대신 리완용이라고 적혀진 밑에 도장을 찍었다.

완용이 돈을 먹는 곳이 두 곳으로 보였다. 비애왕․치루왕 부자가 주는 조선돈을 완용이 먹었고, 통감 寺內正毅가 주는 일본돈을 완용이 먹었던 것으로 추리되었다. 20일 뒤에 있게 될 <일한병합조약>에 흔쾌한 기분으로 도장을 찍어 달라는 청탁금이었다.

8월 29일에 치루왕이 실국(lost)을 공포했다. 양여(give)를 공포했다. 왕은 일본귀족으로 흡수되어 리왕가(李王家)로 되고, 완용 같은 무리는 일본귀족으로 흡수되었다. 29일 자팬땅 동경은 신문 호외를 발행하여 축제가 벌어졌고, 코리안은 집안에서 울기만을 했다. 그 실국조약을 보기로 하자. 1910년 8월 22일 일한병합조약성(日韓倂合條約成). 병합조약. <한국을 일본국에 병합함>이라는 말이 머리글로 되었다.
제1조ː한국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全部)에 관한 일체(一切) 통치권을 완전(完全) 且 영구히 일본국 황제폐하에게 양여(讓與)함

제2조ː일본국 황제폐하는 전조(前條)에 게제(揭載)한 양여를 수락하고 且 전연(全然)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竝合)함을 승락함

제8조ː본조약은 한국황제폐하 급 일본국황제폐하의 재가(裁可)를 경(經)한 자(者)니 공포일로 붓터 차(此)를 시행함
右 증거로 삼아 량 전권위원은 본조약에 기명조인함이라

융희 四년 八월 二十二日 내각총리대신 李完用
명치 四十三년 八월 二十二日 統監子爵 寺內正毅

1910년 8월 29일에 치루왕이 실국(Korea lost nation)을 공포했다. <황제 若曰짐이 비덕(丕德)으로...>(순종실록).

경술실국에 칠적(七賊)은 리완용(李完用)․리재곤(李載崑)․죠중응(趙重應)․리병무(李秉武)․고영희(高永喜)․송병준(宋秉畯)․임선준(任善準)이다. <三李에 高宋任趙>로 되었다. 공포를 마치고 치루왕과 칠적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42장 1910년 8월 29일에 <실국공포> 후 치루왕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1910년 8월 29일에 치루왕은 실국을 공포하고 난 뒤에 기념사진을 찍었다. 모두 일본군복을 입었다. 치루왕이 작은 키로 앞줄 한복판에 앉고 칠적이 좌우로 앉고 서고 했다.

로석은 <庚戌陽八月二十九日 乃朝鮮人, 失國日也>라고 기록했다. 경술년 양력 8월 29일이 곧 조선인이 나라를 잃은 날이라고 말한 것이다. 왕은 실국인이 아니라는 말로도 보였다. 왕은 흔쾌한 기분으로 일본귀족으로 흡수되어 리왕가(李王家)로 되었고, 부왜역적 역시 일본귀족으로 흡수되었으니 <조선인만이 실국했다>라는 말로 느껴졌다. 참으로 그것이 진실이었구나 느껴졌다.

910년 8월 29일이 실국일(失國日)이다. 배달겨레가 경술칠적(庚戌七賊)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했으나, 진실은 비애왕이 이 나라를 넘겨 준 것이다. 치루왕은 그 아비 비애왕이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었다.

로석집 卷之二에 <失國>이 있다. 치루왕 사호에서 失國而不憤曰恥라고 했다. 왕이 실국을 공포하고 칠적을 죄우로 앉게 하고 자신이 일본군복을 입고 흔쾌한 얼굴로 기념사진을 찍은 것을 보고 로석이 분격하여 <왕이 나라를 잃고서도 분격하지 않음이 부끄럽다>고 하여 부끄러울 치(恥)를 사호 첫 글자로 준 것이었다. 로석은 상투를 지킨 보발자(保髮者)로 큰갓을 쓰고 평생을 흰두루막 위에 도복을 입고 다녔다. 일본군복을 입은 일본귀족 李王과 일본군복을 입은 일본귀족 칠인을 보고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실국시대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가 창간호를 내었다. 해마다 8월 29일이 되면 치루왕이 찍은 실국기념사진을 실었다. 완용을 죽이려고 하는 렬사들을 위하여 얼굴을 미리 익히라는 뜻으로 실었던 것이다. 동아일보에 실렸던 실국기념사진을 로석이 보고 울었을 것이다. 치루왕과 칠적이 입은 일본군복을 보고 로석이 분격하여 부끄러울 치를 사호로 준 것같다.

8월 29일 자팬 동경 시가는 온통 흥분으로 들끓었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문 호외를 보는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 나왔다. 집집마다 일장기가 펄럭이고 상가는 철시했으며 꽃전차가 거리를 누비는 가운데 나팔수를 앞세운 축하행렬이 그 뒤를 따랐다. 밤에는 제등행렬이 등장했다. 쥐죽은 듯 고요한 침묵의 서울 거리와 환호로 들끓는 동경 거리 사이 대조된 표정은 이후 36년 동안 펼쳐질...(丁喜相ː시사저널 제148호.경술국치 그날의 始末1992년 8월 27일)

로석은 <국치설분가>․<실국이원소가>를 지었다. 조선어로 되었다고 했다. 배달말로 지었다는 말이다. 글자는 차이나 글자를 빌렸다.

國恥雪憤歌
<원수로다, 원수로다. 완용이가, 원수로다. 오호어희, 완용이가, 조선인에 원수로다. 失國而不作歌, 是亦恥老多. 失國而無憤歌, 是亦恥老多>.(老石集一卷之一詞․辭․歌)
나라를 잃었는데 노래를 짓지 아니하면, 이것이 또한 부끄러움이로다. 나라를 잃었는데 분한 노래가 없다고 하면, 이것이 또한 부끄러움이로다.

<失國而怨訴歌> 二首
억울하다 원소하세. 옥황상제전에 원소하세. 정화수두고 나라회복을 원소하세.(朝鮮歌)

雲上聖王積善通, 玉皇大帝佑吾東. 壬辰恢復天垂福, 庚戌失邦奏事怱(中原歌) 구룸위 성왕은 착한일을 쌓아가는 왕으로 통하도다. 옥황상제는 우리조선을 도우기하도다. 임진왜란 회복은 하늘이 내린 복인데, 경술년에 나라잃은 경술실방은 여쭐일이 급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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