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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설탄압
최훈영  2005-02-24 13:11:28, 조회 : 2,156, 추천 : 422

<국민>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경계말이 나왔습니다.

이승만은 야소교 학교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문교부령이 아닌 쪽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승만은 경찰의 등에 업혀서 구름처럼 되었습니다.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승만은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역사 정리를 하지 아니했습니다. 국회가 민족반역자 처벌법을 만들기는 했으나, 이승만은 그것을 시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이승만은 일본 총독부 시대를 연장시키는 정치를 했습니다. 1946년 양력 1월 1일이 되었습니다. 부왜역적 후손들은 왜놈설인 1월1일을 양력설이라고 하면서 설로 쉬었습니다. 부왜인은 아니나, 양력으로 설을 쉬는 집이 있게 되었습니다. 공휴일이 아니어서 불편하다고 하면서 그렇게 쉬었습니다.

유림 쪽 조선사람은 양력 1월 1일을 왜놈설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왜놈설이라고 하면서 주먹을 쥐기도 했습니다. 음력 정월 초하루가 되면 밀주 누룩을 들켜서 벌금을 물어가면서도 음력설을 쉬어온 집이 있습니다. 일본 순사가 가버렸으니, 마음놓고 음력설을 쉴 수가 있었습니다. 광복을 고맙게 여긴것이 바로 음력설 쉬기에서 보여졌습니다.

1946년 병술년 배달겨레가 거의 음력설을 쉬게 되었습니다. 1947년 정해년 설이 또 그러했습니다. 1948년 무자년 설이 또 그러했습니다.

이승만은 명년 1949년 부터 양력설을 쉬도록 만들기 위하여 1월 1일,2일 이틀을 공휴일로 정했습니다. 1949년 1월 1일이 되었습니다. 쉬는 사람이 드물게 되자 이승만은 음력설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1949년 기축년 음력설날은 실국시대로 돌아 간 것입니다.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만든 집단이 한민당이고 야소교인 이었습니다. 부왜역적 후예들과 일본앞잡이들도 이승만을 도우기 했습니다. 그들이 이승만을 보고 음력설을 탄압하라고 한 것이었는지, 이승만 자신이 음력설을 없애려고 한 것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이승만이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으나, 그 두루마기는 사기꾼 두루마기였습니다. 이승만 머리는 일본사람 머리와 미국사람 머리가 하나로 된 것이었습니다. 이승만의 머리는 일본쪽이 80이고, 미국쪽이 20이었습니다. 이승만은 실국시대 일본사람 총독이 했던 그대로 음력설을 탄압했습니다.

경찰을 시켜서 누룩을 찾아내어 벌금을 매기는 짓을 했습니다. 음력설날이 공휴일이 아니기에 출근하도록 시켰습니다. 군청 직원이 출근해 보았자, 군청에 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승만이 음력설을 눌리기 위한 수단으로 추석을 명절로 만들었습니다. 추석을 공휴일로 하고, 최대 명절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퍼뜨렸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신라 가배 날이 추석이 되어서 제사를 지냈다는 거짓말을 교과서에 적기도 했습니다. 거짓말을 교과서에 적어서 가르치는 나라로 된것입니다.

<農家月令歌> 팔월노래를 봅시다. <추석 명절 쉬어보세. 신도주(新稻酒) 오려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祭物)하고 이웃짓 나눠먹세>로 되어있습니다.

안동 내앞(川前里) 의성 김씨 청계(靑溪) 종가는 광복 후에도 계속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옛 것을 지키는 고가(古家)로서는 조선 땅에서 으뜸가는 집이 청계 종가입니다.

<<혼례보감>>쪽 321을 보십시오. <<老石集>>에도 <秋夕詩>가 없고, <秋夕祭>에 대한 글이 없습니다. <<老石集>>에 <元朝節祀詩>가 많이 있으나,<秋石詩>가 없습니다. 노석은 실국 28년(1939)에 별세했습니다. 비애왕 병신년에 설날제사를 시작했으나, 청계 종가 처럼 추석 제사를 지내지 아니했습니다.

9월 9일을 중구절(重九節)로 처사(處祀)하는 집이 고가(古家)였습니다.

이승만은 양력 1월 1일과 2일, 이틀을 공휴일로 정하여 신정(新正)이라고 했습니다. 음력설을 구정(舊正)이라고 하면서 출근하라고 했습니다. 왜로 총독처럼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양력이 태양력이라고 하면서 과학에 맞다고 하기도 하다가, 선진국이 양력을 쉰다고 하면서 꼬시기도 했습니다. 조선사람은 양력설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왜놈설이라고 말하고 보니,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승만은 미움을 받게 된 것은 음력설을 없애버리려고 하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서양사람처럼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해서 겨레 정서를 꺾으려고 했습니다.(배달겨레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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