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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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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5 13:00:42, 조회 : 2,192, 추천 : 504 |
4.19학생의거에, 내 딸 신자는 죽었어도
4․19의거에 덕성녀중 2학년 최 신자가 목숨을 잃었다.
어머니 오 준선이 지은 글
10년전 4월 19일을 생각하면 평온을 회복한 것 같은 마음에 새삼 동요가 일어나지 않을수 없다. 그때 우리 내외는 남대문 시장에서 조그마한 식료품 가게를 차려놓고 아침 여섯 시에 나와 밤 10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오곤 했었다. 6남매 중 위로 세 아들은 제대를 했거나 군복무중이다. 넷째 딸인 신자는 덕성여학교 2학년, 다섯째 사내아이와 막내 딸은 국민학교에 재학중이었다.
3월 15일, 전국 곳곳에서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고, 투표함을 열어본 결과는 예상외 엄청난 표차로 자유당이 승리했다는 것이다. 표 도둑을 맞았구나 하는 분개를 느끼는 새에 마산사건이 터졌고, 신문이나 전파는 이 소식을 지체없이 알려 왔다. 민심이 뒤숭숭했다. 그리고 무언가 보다 큰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긴박감을 예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잇달아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김주열 시체가 낚시꾼의 낚시에 걸려 물위에 떠올랐다는 소름끼치는 소식이 들려 왔다.
4월 19일！ 신자가 죽던 날이다. 나는 시장에 나와 있었다. 아침인사 말이 고대생들이 깡패에게 두들겨 맞았다는 얘기들이었다. 몇 사람은 영 병신이 되었을지도 모르게 갈고리로 몽둥이로 맞았다는 것이다. 이젠 서울도 조용하게 되기는 틀렸다고 생각되었다.
10시 반쯤 신자가 가게로 나왔다. 친구하고 사진 찍었는데 찾아야 한다고 돈 200환만 달라는 것이었다. 200환 주면서, 기다렸다가 점심이나 먹고 가라고 했으나,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해두었다면서 책가방을 들고 나가 버렸다.ꡒ거리에 많은 학생들이 나와 있을텐데, 조심해가라ꡓ고 건네는 걸 잊지 않았다.
오후 네시가 좀 넘었을 때, 남편이ꡒ큰일 났어. 장사고 뭐고 집어치우고 남대문 로터리 좀 나가봐ꡓ라고 하면서 들어오는 것이었다. 6․25 전쟁터 같이 길바닥에 피가 흘러 있고 밀리고 밀치고 하는 수라장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허겁지겁 남대문에 이르러 보니 사방에서 총소리가 나고 잠바를 벗어든 학생은 목이터져라 외치고, 소방차를 탄 학생들은 태극기를 휘두르고 울면서 호소하고 있었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동안 어느새 나는 학생들의 대열 속으로 휩쓸리고 말았다. 흰 가운을 입은 의대학생들은 들 것을 들고 좌우 인도에 선 사람들을 향하여 박수를 치라는 것이었다. 박수가 터졌고 박수에 보답이라도 하는 양, 학생들은 연신 두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다섯 시경 독재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육탄으로 육박하는 데모대와, 잘 훈련되고 총을 잡은 독재정권의 졸개들 간에 발생한 충돌로 어느 편이 얼마나 부상을 당했는지 자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었다. 10년 독재를 곡필로 감싸온 서울신문사가 불길에 싸여 타고 있었고, 곳곳 파출소 유리들은 몰골 사납게 깨어져 있었다.
홍역을 치르는 듯한 열기속을 빠져 집에 도착해 보니 대학생인 듯한 세 처녀가 대문을 열었다. 불길한 예감, 갑자기 마음 다급해진 나에게 학생증을 보이면서 이 학생이 이 집에 사느냐고 물었다. 왜 그러냐고 덤비는 나에게 신자가 다리에 부상을 입었는데 함께 병원으로 가 보자는 것이었다. 심장엔 억센 고통이 오고 다리엔 힘이 빠졌다. 계엄령이 선포된 서울 거리는 해일이 밀치고 간 갯벌모양 음산했고, 널려있는 돌멩이며 휴지쪽들이 무질서 했다. 확실한 장소를 몰라하는 여학생들을 따라 어느 골목길에 접어들었을 때 10여 미터 전방 건물 앞에 여나문 사람들이 모여 서 있었다. 여학생들은 그집으로 들어섰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나는 심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벽에 의지하여 2층에 올라 섰을 때는 울부짖는 소리가 났고, 내 사랑하는 딸 신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포등포등했던 사지는 얼음장 같이 차가웠고 얼굴을 덮어둔 흰종이를 거두었을 때 두 눈은 반쯤 열려 있었다. 신자의 시신 곁에는 상급생 두 여학생이 흐느끼고 있었고, 그 외 사람들은 선 채 침통한 빛이었다.
한가롭게 울 수도 없는 이 엄청난 현실！ 대관절 이 어리석고 순진한 것이 총을 맞아 죽을 만한 죄과가 무엇이란 말인가！ 여기에 그냥 둘 수 없다는 아들의 말을 따라 싸늘한 딸년의 육신을 들쳐 업고 거리에 나섰다. 계엄령으로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거리엔 사람이나 자동차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 골목 저 골목 헤매어 집에 도착했다. 동리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나는 그 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이튿날 정오에 담임 선생과 다른 두 분 선생이 오셨다. 신자의 가방 속에서 나온 쪽지를 보았더니 한 반 옆 자리에 앉았던 구순자의 필적이라고 했다. 어제 구순자도 죽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나란히 앉아 공부하며 우정을 주고 받은 꿈많은 두 여학생이 저승에 가서도 함께 있을 양으로 한날 한시 같은 장소에서 총알을 맞은 모양인가！ 총에 맞아 신음하는 불쌍한 것들을 들쳐 업고 병원을 찾았을 때, 응급처치의 인술을 거부했다는 이야기에는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병원 저병원 다니는 동안에 몸속에 있는 더운 피가 빠져서！ 즉시 손을 썼으면 살았을지도 모를 귀한 생명들이 끝내 숨을 거두었다는 것 아닌가！ 썩은 정치, 두들겨 패는 정치, 하지 말라는 학생들 시위를 엉뚱하게도 공산당의 조정에 놀아났다는 식으로 죄를 뒤집어 씌워 사태를 마무리하려 했던 더러운 자유당 정권의 보복이 무서워서 그랬단 말인가！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적군을 치료해 주는 것도 사람의 목숨이 그 무엇보다 귀하다는 이유에서 그러했다. 같은 동포, 같은 서울에 사는 학생들이 흉탄에 맞아 죽어가도록 만든 비인간적 만행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용서할 수 없다>. 거리에 나섰다가 순경이 눈에 띄면 저 놈이 신자를 죽인 게 아닌가 하는 저주가 앞섰고, 할 수만 있으면 장본인을 찾아내어 똑같은 방법으로 죽여주고 싶은 복수심에 몸이 떨렸다.
한 가지 기이한 현상은 한 때는 그렇게도 활발하게 신문이나 잡지, 라디오 등의 기사거리가 되고, 단군 이래의 위대한 혁명이라던 4․19가 그 후로는 시들해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탑이나 비문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말았는가！ 의롭지 못한 정권은 끝내 무너지고 만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학민사. 4.19자료집. 쪽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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ꡒ4.19학생의거에, 내 딸 신자는 죽었어도ꡓ라는 글은 <고등학교 정치사회 교과서>에 실리었으면 좋겠다. 또 경찰대학 교과서에 실리었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교재로 되리다.
<대관절 이 어리석고 순진한 것이 총을 맞아 죽을 만한 죄과가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글을 읽어야 될 사람은 리승만이었다. 리승만은 글을 읽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어찌하랴.
<총에 맞아 신음하는 불쌍한 것들을 들쳐 업고 병원을 찾았을 때, 응급처치의 인술을 거부했다는 이야기에는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는 동안에 몸속에 있는 더운 피가 빠져서！ 즉시 손을 썼더라면 살았을지도 모를 귀한 생명들이 끝내 숨을 거두었다는 것 아닌가！>. 오호라. 남의 목숨이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리승만이었도다.
<썩은 정치, 두들겨 패는 정치, 하지 말라는 학생들 시위를 엉뚱하게도 공산당의 조정에 놀아났다는 식으로 죄를 뒤집어 씌워 사태를 마무리하려 했던 더러운 자유당 정권의 보복이 무서워서 그랬단 말인가！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적군을 치료해 주는 것도 사람의 목숨이 그 무엇보다 귀하다는 이유에서 그러했다. 같은 동포, 같은 서울에 사는 학생들이 흉탄에 맞아 죽어가도록 만든 비인간적 만행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용서할 수 없다>라는 이 대목을 읽어야 될 사람이 리승만이다. 오호라. 리승만은 저승문이 열리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하고 헤매고 있으리다.
<거리에 나섰다가 순경이 눈에 띄면 저놈이 우리 신자를 죽인 게 아닌가 하는 저주가 앞섰고, 할 수만 있으면 장본인을 찾아내어 똑같은 방법으로 죽여주고 싶은 복수심에 몸이 떨렸다>라는 이 대목을 읽으면, 리승만이 발포명령을 내렸더라도 경찰이 그것만은 거절했어야 옳았건만, 하는 생각이 든다.
<의롭지 못한 정권은 끝내 무너지고 만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라는 말은 가슴에 새겨야 될 글이다. 리승만 앞잡이를 했던 사람들은 모두 이 글을 읽고 부끄러워 하면서 죽은 듯이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죽어서 저승문이 열리게 된다.
려증동／경상대 명예교수／배달학
날짜: 2006년 06월 13일
작성자 : 려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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