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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대통령 김영삼이 <총독부 건물 철거>를 명령했다. 배달겨레가 통쾌통쾌로 울면서 박수쳤다. 50년만에 처음으로 있었던 통쾌였다
최훈영  2006-10-23 22:27:07, 조회 : 3,414, 추천 : 336

1995년 대통령 김영삼이 <총독부 건물 철거>를 명령했다. 배달겨레가 통쾌통쾌로 울면서 박수쳤다. 50년만에 처음으로 있었던 통쾌였다

실국시대 <총조선총독부> 건물(1926․10~1995․8)이 69년 동안 경복궁(景福宮)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자팬 일본이 코리안 배달겨레 숨통을 막기 위하여 경복궁 앞에 대리석 건물을 우뚝 세웠던 것이다. 총독부 건물을 보노라면, 잃었던 나라찾는 광복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제3대 총독 재등(齋藤實)이 그 건물을 우뚝 세웠던 것이다. 경복궁을 가로질러 세웠던 것에서 코리안이 좌절감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조선국 태조가 일으킨 정궁(正宮)이 경복궁이다. 1995년에 대통령 김영삼이 그 훙칙스런 <총독부 건물>을 철거시켰다. 그 흉물이 69년 동안 경복궁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광복후 50년 만에 포크레인으로 꼭지를 내려 쳐박았다. 그제사 경복궁이 보이게 되었다.

광복후 초대 대통령 리승만이 <총독부 건물>을 뜯었어야 할 일인데, 하지 아니 했다. 리승만이 12년 동안이나, 그냥 둔 것이다. 리승만 실체가 여기에서 보여지고 있다. 리승만시대 <총독부 건물 없애자>는 연극을 했다고 보도련맹에 가입되어 1950년 7월에 목숨을 잃은 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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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1876년 정월에 일본군함 7척이 경기도 바다가를 침략 점거했다. 일본군 장수 흑전청융(黑田淸隆)이 강화도에 진을 치고, 조선 항구 세 개를 내어놓으라고 했다. 이것을 선비들이 병자왜란(丙子倭亂)이라고 기록했다. 광복후 일본간첩 대학 교수자들이 이것을 개항(開港)이라고 주둥아리를 놀렸다. 실국시대 총독부가 발행한 <朝鮮史>에 적혀 있는대로 일본간첩 교수자가 베끼기했던 것이다. 병자년부터 일본공사(日本公使)가 서울에 근무하게 되었다. 일본공사관을 서울 남산에 지었다. 1905년 11월에 이등박문이 일본특파대사로 조선에 왔다. 그때 일본공사는 림권조(林權助)였다. 11월 17일에 이등박문이 <조선외교권이 일본 동경으로 가고, 일본통감이 조선을 다스린다는 조약>을 내어놓았다. 이것을 선비들이 을사륵약(乙巳勒約)이라고 했다. 광복후 일본간첩 대학교 교수자들은 <을사보호조약>․<을사조약>으로 책에 적었다. 1906년 2월 1일에 남산에 있는ꡐ일본공사관ꡑ이라는 간판을 내려띠고, 그 자리에ꡐ일본통감부ꡑ라는 간판을 걸었다. 1906년 3월 2일에 초대통감 이등박문이 서울 남산에 와서 통감자리에 앉았다. 5년 뒤 1910년 8월 29일에 실국조약(失國條約)이 공포되었다. 남산에 걸려있는 <일본통감부>라는 간판이 내려지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라는 간판이 걸려졌다. 초대총독 사내정의(寺內正毅)가 남산에 있는 총독부, 총독자리에 앉아서 조선을 다스렸다. 제2대 총독이 장곡천 호도(長谷川好道)였다.

제3대 총독 재등 실(齋藤實)이 1919년 9월부터 총독이 되어 1927년 11월까지 했다. 총독 재등(齋藤)이 경복궁 앞을 가로지르는 <경복궁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기 시작해서 1926년 10월에 완공하여 <남산 총독부 건물>에서 <경복궁 총독부 건물>로 짐을 옮겼다.

독자 여러분. 총독부 건물을 경복궁 앞에 우뚝 세웠던 총독이 3대 총독 재등(齋藤實)이었소이다. 이름이 <實>이었다. 재등이 1919년 9월 2일 총독 부임으로 남대문역(지금서울역)에 내렸다. 강우규 의사(姜宇奎 1855~1920)가 총독을 죽이려고 남대문 역에 나타났다. 잉글랜드제 폭탄을 가슴에 품고 나타난 것이다. 재등이 탄 마차가 가까이 왔을 때 폭탄을 던졌다. 폭탄이 재등을 빗겨나서 자팬 경찰과 수행원 30명이 다쳤다. 살아난 총독 재등이 총독부 건물을 경복궁 앞을 가로질러 크게 우뚝하게 세워서 <코리안 正氣>를 끊으려고 했던 것이다. 총독 재등이 총독부 건물을 경복궁 앞에 1926년 10월에 준공하여 남산에서 옮겼다. 1년 2개월 뒤에 일본정부가 재등을 불렀다. 1927년 12월에 제 4대 총독이 산리반조(山梨半造)로 바뀌었다. 1929년 8월에 제5대 총독으로 또 재등(齋藤)이 와서 1931년 6월까지 총독을 했다. 재등은 3대 총독을 8년 했고, 5대 총독을 2년 했다. 6대 총독이 우원 일성(宇垣一成)이었고, 7대 총독이 남 차랑(南次郞)이었고, 8대 총독이 소기 국소(小磯國昭)였고, 마지막 9대 총독이 아부 신행(阿部信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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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오후부터 왜놈들이 부산항구에 모여서 자기나라로 돌아갔다. 코리안 배달겨레는 잃었던 나라땅을 찾게 되었다. 선비들이 춤을 추면서 잔치를 벌렸다.

자팬 일본은 해마다 8월 15일을 패전 국치일로 삼고 눈물을 흘리는 날로 되었다. 패전후 자팬 일본은 남배달 코리안 대학교 교수자에서 자기들 편을 들어주는 방패막이를 구해서 돈을 주는 매수작업을 했다. 돈을 주고 사람을 사는 매수작업(買收作業)을 국책사업으로 했다. 일본정부는 <총독부 건물 보존하기>, <이등박문 보호하기>, <리완용 보호하기>를 3대 국책사업으로 삼아서 엄청난 돈을 남배달에 보내고 있다. 그 돈을 받아서 시키는대로 관리해 주는 곳이 연세대학이다. 직업을 가지고 리적행위를 하는 사람을 고정간첩이라고 한다. 실국시대 매국노(賣國奴)가 리완용 등 100여명이었고, 광복후 매국노가 <일본고정간첩 대학교 교수자>로 되었다. 문과 교수자가 일본간첩 매국노로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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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김영삼(金泳三 1927~)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995년에 대통령 김영삼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라고 했다. <광복당원>은 좋아라 하면서 50년 만에 처음으로 나타난 대통령이라고 했다.

기독교 목사 강원룡(姜元龍 1917~2006)이 <총독부 건물 철거 반대 가처분 신청서>를 서울지방법원에 제출했다. 강원룡이 58명을 거느리고 <철거 반대 가처분 신청서>를 내었다. 58명 가운데 7명은 신문에 이름이 보도되었다. 신문기사는 <강원룡 목사외 58명이 총독부 건물 철거 반대 가처분 신청서를 내었다>라고 기록했다.

서울지방법원 50부 재판장 권광중(權光重 1942~) 판사가 강원룡이 제출한 <총독부 건물 철거 반대 가처분 신청서>를 쓰레기통에 넣어버리는 판결을 내렸다. <총독부 건물, 그것이 너그 집이더냐>로 되받아 묻는 판결이었다. 판결문은ꡒ법률상 리해당사자가 아니라ꡓ고 표현했다. 통퇘한 판결문이었다.

1995년 8월 15일 광복절에 <총독부 건물 꼭지 대가리가 포크레인으로 내려져 땅바닥에 쳐박히게 되었다. 나는 텔레비젼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손벽을 쳤다. 총독부 건물을 허무는데 50년이나 걸렸다.
강원룡은 함경남도 이원 출신으로 1940년에 일본 조도전(早稻田)학원 영문과 졸업으로 기록되어 있다. 40년에서 45년 8월 15일까지 5년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기록이 없다. 1998년에 강원룡이 자서전을 내었다. <총독부 건물 철거 반대 가처분 신청>에 대한 회고록이 그 자서전에 없다. 자서전에서 그 일이 빠져서 되랴. 자서전은 눈물로 써야 한다. 독자가 읽고 눈물을 흘려야만 자선전으로 된다. 자기를 자랑하는 연설글은 읽어 줄 사람이 없다. 군자가 되려고 하면 걸어온 발자취가 해달처럼 밝아야 한다. 잘못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군자로 된다. 잘못을 감추기하면 소인으로 된다.

저승에는 하루빈 안중근선생 곁에 심산선생이 앉아 계신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2003년에 <心山賞>을 주는 심산학회를 만들었다. 신산상을 받을 사람, 그 제 3호를 판사 권광중(權光重)한테 주었다. 2003년《혼례보감》이라는 책 쪽 389에 <심산상 제3호>가 발표되었다.

대통령 김영삼이 아니었더라면 흉칙스런 총독부 건물이 그대로 서서 배달겨레 숨통을 막아 나갔을 것이다. 겨레를 겨레답게 만드는 일은 대통령 령(令)으로 이룩되어야 한다. 대통령은 나라땅을 굳게 지키고, 겨레를 굳게 지켜야 한다. 대통령은 취임하기 전에 국회에서 그렇게 하겠노라고 선서한다.

려증동/경상대 명예교수/배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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